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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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0

2023-07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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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필요한 이유




여름 방학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방학이 처음인 1학년 아이들에게는 더욱 특별할 텐데요. 그래서 물어 보았습니다.


“여름 방학이 곧 오잖아. 방학 때 뭐 하고 싶어?”


수영장 가기, 캠핑 가기, 레고랜드 가기, 삼악산 케이블카 타기 등 말만 들어도 즐거운 소망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 아이가 불쑥 말하더군요.


“저는 다 필요 없고요. 그냥 게으름뱅이가 될 거예요.” 


“네, 좀 쉴라고요.” 

“아이고, 힘들었구나.”

“엄청 힘들었죠. 글씨도 많이 쓰고. (손을 내보이며) 보세요. 손가락이 쏙 들어갔죠?”

아이고, 얼마나 공부가 힘들었으면, 그래서 얼마나 쉬고 싶으면 게으름뱅이가 되고 싶을까요? 공부가 조금 늦된다 싶어 끌다시피 가르쳤는데, 아이에겐 힘들었나 봅니다. 싫은 공부 억지로 하자니 떼가 나 연필 내던지고 울기도 여러 번. 하는 짓이 짓궂어 야단맞기도 여러 번. 저 또한 녀석과의 한 학기가 길게 느껴졌는데, 가르치는 쪽보다 배우는 쪽이 더 힘들게 마련이지요. 한 학기가 다 끝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비뚤배뚤하고 쥐 갉아 먹은 옥수수처럼 이 빠진 글자들을 보면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는 무슨 배짱인지 공부 많이 했다고 말합니다. 현실에 기죽지 않는 모습이네요? 오히려 당당해 보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노력으로 이룬 결과에 대해 자긍심도 터득한 것 같습니다. 글자 공부보다 어려운 걸 배웠군요.


다른 아이들은 어떤 게 힘들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3월부터 다섯 달 째 학교 다니고 있잖아. 지금까지 뭐가 힘들었을까?”

“받아쓰기요. 만날 어려운 거만 냈잖아요. 틀리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저는 오이 못 먹는데 선생님이 먹어보라 그랬잖아요. 선생님 땜에 토할 뻔 했다고요!”

“숙제 공책 집에 놓고 왔는데 선생님이 다시 쓰라 그랬잖아요. 손가락 뿌러지는 줄 알았네.”

아이들 말을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너네 엄청 힘들었겠네.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면 풀릴까?”

“우리 맘대로 하게 해줘요!” 

“어떻게 맘대로 놀 건데?” 

“검정 고무신 노래 틀어줘요.”

노래를 틀자마자 한 아이가 책상 위로 올라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슬슬 다른 아이들도 따라 올라가더군요.


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척을 해 보인 뒤,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춤을 추던 아이들이 저를 보고 소리치더군요.


“선생님도 책상 위로 올라가요. 선생님도 힘들었잖아요.”


한 학기 내내 구속하고 힘들게 한 제가 밉기도 하련만, 아이들은 기꺼이 저도 초대해주더군요. 저는 책상 위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따라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아이들이 까륵까륵 아기새들처럼 웃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이 자리로 내려오자 한 아이가 불쑥 물었습니다.


“근데 선생님도 힘든 게 있었어요?”


저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너네더러 계단에서 뛰어내리지말라 그랬잖아. 너네 다칠까 봐 그런 거야. 근데 너네가 자꾸 뛰어내려서 말리느라 힘들었어. 또 너네 건강을 위해 채소 많이 먹으라고 말했는데 채소를 급식실 바닥에 몰래 버려서 치우느라 힘들었어.”


그 말에 잠시 조용하더니 한 아이가 제 팔을 잡으며 말하더군요.


“에이, 참으세요, 선생님. 담엔 안 그럴게요. (아이들을 보며) 야, 니네도 담에 그러지 마. 알았지?”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날따라 아이들에게 진정성이 느껴진 건, 그래서 저 아이들이 정말 행복한 방학을 보내고 안전하게 학교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 건, 그래, 방학이라서일까요.








송주현

소양초등학교 교사.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착한 아이 버리기>, <초등학교 상담기록부> 저자. 32년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