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전경>
이상하다.
김유정은 죽어서도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는 스물아홉에, 장가도 못 가고,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가 남긴 단편은 지금도 꾸준히 읽힌다. 대표작으로 봄봄, 동백꽃, 만무방, 금 따는 콩밭, 산골나그네 등은 제목만 읽어도 김유정 소설임을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당시의 마을주민이고, 배경도 실레마을 지명이 그대로 나온다. 이렇게 소설이 모두 실레마을 이야기여서, 사람들이 실레마을에 오면 김유정 소설 속으로 텀벙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20년 전, 김유정문학촌이 세워졌을 때는 아주 고요하고 한가롭던 마을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일 년에 80만 명이 찾는 실레마을엔 신남역이란 역이름이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글 쓰는 이들이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고, 화가가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금병산 자락 과수원엔 예술인마을이 생겨났고, 과수원 주인은 시를 쓰기 시작하더니 시인이 되었다.
더군다나 ‘책과 인쇄박물관’이 스스로 들어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다른 도시에서 그렇게 유치하려고 애썼던 전국 유일의 인쇄박물관이 왜 김유정 마을을 찾아든 것일까.
김유정은 지금도 슬쩍 나타나 마법의 펜으로 실레마을의 예술 지도를 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예술원 회원인 소설가 전상국 ‘문학의 뜰’은 삼악산 노을을 늘받아서 진홍빛으로 빛나고 있다. 거기엔 다양한 문학 자료가 풍부하게 비치되어 있다.
또한 세계적 화가 함섭의 스튜디오는 아침마다 북소리가 들린다. 그 북소리가 금병산 자락을 깊이 울린다. 하루의 그림 작업이 시작되는 신호이다. 어느 날엔 꿈에서도 만날 수 없는 미국의 거부 록펠러 가문의 회장이 불쑥 찾아와 그림을 사가기도 하는 곳이다.
김유정 문학촌엔 참 별일도 다 있다.
예술공장 ‘봄’이란 이름의 소극장이 들어선 때가 2년 전 일이다. 연극인 ‘도모’ 대표 황운기의 생각은 창대하다. 김유정 문학이 숨 쉬는 이곳을 실리콘 밸리처럼 만들자.
샌프란시스코만의 실리콘 밸리를 예전엔 산타클리라 골짜기라 불렀다. 그 골짜기는 본래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예술공장 봄’의 건물도 예전엔 막걸리 생산 공장이었다.
그런데 참 놀랍다.
또 하나의 ‘예술’이 ‘예술공장 봄’ 곁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목수 같은 사람이 슬며시 나타나더니 뚝딱 건물을 짓고, 건물 상단 벽에 붉은 글씨를 새겼다.
<(위부터)누룩방, 누룩술 제조 모습과 양조>
분명 예술이다. 술 빚는 공장이라 했다. 그러니까 누룩으로만 빚어내는 우리 전통주가 김유정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醴 + 술 = 藝術
이건 수학 공식이 아니다. 화학방정식이다. 단술 ‘醴(예)’와 우리말 ‘술’이 합하여 藝術(예술)이 된다는 방정식. 얼마나 기발한가.
<숙성 중인 술독과 예술 대표 정회철 씨>
소문은 자자했고, 외지에서 먼저 알고 이 예술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달려왔다.
대표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했고, 곧바로 징집되어 군대를 다녀왔고, 이제 뭘 하나 생각하다가 안산의 중소기업에 취직했고, 1987년 노동 대투쟁이 일어났을 때 파업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구속되었고, 그 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평택 노동상담소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3년 동안 일했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행운의 나무를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였다.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례 조치가 발표되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에 재입학했다. 그때 나이 서른셋이었다.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상위였으나 지난날 노동운동의 경력 때문인지, 원하던 판사 임용이 거부되었다.
로펌에서 변호사 일을 잠시 하다가, 그것도 시큰둥하여 안녕 굿바이했고, 헌법에 관한 기본서와 판례강의, 헌법연습 등 10여 권의 수험서 책을 발간했다. 책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학원 강의가 듣도 보도 못한 명강의여서 신림동 1타강사로 이름을 드날렸다. 지금도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어 있다. 그의 책을 보지 않고 판검사나 변호사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했다.
그런 그가 또 잠시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교수 생활 중에도 시름시름 앓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교수직도 그만두었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빚은 술이 먹고 싶어졌다. 어릴 적 할아버지 술 심부름을 자주 했을 때, 막걸리 주전자에서 나는 냄새를 기억한 때문인지도 몰랐다.
인터넷을 뒤져 술을 빚었다. 아내가 경영하는 출판사 사무실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주위에서 지인들이 냄새를 맡거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는 사무실 바닥에다 멍석을 깔고 그가 빚은 술을 나누어마셨다.
그렇게 그의 허허로운 빈자리를 손수 빚은 술이 채워주었다. 나빠졌던 건강도 점차 회복되어 갔다.
그는 술에 푹 빠졌다. 재미있었다. 그 맛과 향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깨달았다. 우리의 술은 누룩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룩 술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가 빚은 누룩 술은 몸의 장기를 튼튼하게 해주었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3년을 전통주 연구에 몰입했다. 더불어 목공 일도 배웠다. 목수 일과 술 빚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누룩술 제조 중인 정희철, 조인숙 부부>
그로부터 두 부부는 ‘술 빚을 마을’을 물색하러 전국을 쏘다녔다.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마을은 10년 동안 늘 술 익는 누룩 냄새가 났다. 일곱 종의 술이 제조되었다.
무작53, 동몽, 동짓달 기나긴 밤, 만강에 비친 달 등 술병에다 시를 담았다. 멋과 격조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정말이지 술은 맛있고, 깔끔하고, 여운이 있었다. 매화향처럼 술향이 느껴진다고 했다.
‘동몽’은 2018년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증류주 ‘무작53’은 이름 그대로 도수가 53도이다. 무작은 ‘지음이 없다’는 뜻인데, 저절로 2년을 발효 숙성한 술이다. 고가이지만, 이제는 한국의 명품으로 평판이 높다.
그가 빚는 술은 모두 누룩으로 발효된 약주藥酒이다. 술이 약이 된다는 말이다. 예술에서 나오는 모든 술은 누룩으로 두 번 빚어진다. 이런 술을 이양주라 한다. 그래서 색깔이 곱다. 진한 색도 있고, 투명한 색깔도 있다. 설탕이나 감미료는 첨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 만들어낸 상품일지언정 상품 유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창궐하여 몇 년간 산 좋고 물 좋은 골짜기는 더욱 한산해졌다.
그래서 곰곰 궁리한 끝에 서울과 접근성이 좋은 춘천 김유정 마을로 이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결단에 큰 힘을 실어준 이가 저 유명한 진취적 철학가 허태수 목사였다.
<예술에서 출시중인 예술주>
1년여를 집 짓고 나서, 작년 사월에 개소식을 가졌다. 그 후 일 년이 되자, 술맛 술향이 소문을 탔다. 무엇보다 건강주라는 소문이 자자하여 마케팅 사업이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통주를 보급하기 위해 ‘전통주 양조학교’도 열었다. 드디어 네 명의 ‘꿈꾸는 이들’이 배출되었다. 올해로 두 번째 교육생을 모집한다고 한다.
예술은 품격과 고급함을 강조한다고 했다.
당연히 춘천 ‘김유정역’이란 이름의 탁주가 먼 열차의 기적처럼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대체 누구지?
그의 이름은 정회철, 그의 반려자 이름은 조인숙. 부부는 술을 빚으면서도 옛 김유정역을 스쳐 지나가는 열차의 소리를 귀담아듣는다. 오늘도 누룩 술이 솔솔 익어간다.
삼악산 놀이 점점 더 붉어진다. *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서 현지는 있을 것이다. 당신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