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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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9

2023-06
#예술가의 일상 수집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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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내일을 살아내기




‘어느 초여름밤, 모든 것이 익숙해져 평범해져버린 이 도시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펜스를 넘어 축제장에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스쳤다. 그리고 그곳은 오늘밤, 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재작년 겨울 상상마당에서 개인전을 할 때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 춘천에서 지내는 동안의 기억 중 가장 좋아하는, 10년도 더 된 옛 기억을 끄집어낸 글이죠.




오래전 그날 저는 공지천의 옛 어린이회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잔잔하기만 하던 도시, 춘천이 마냥 심심하기만 했었죠. 그날도 크게 특별할 것 없이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였다면 허허벌판이었어야 할 공터에 모닥불을 피우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펜스 건너에서는 마임축제의 마지막 날인 도깨비난장이 펼쳐지고 있었다더군요.




펜스를 경계로 사람들은 안쪽에 모여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천막을 치고, 그 주위에 앉아 악기 연주를 하기도, 춤을 추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였습니다. 또 누군가는 마임축제의 마지막 밤을 불태우기라도 하는 듯한 격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몸짓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일렁이는 모닥불에 비쳐 보이는 그곳의 풍경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춘천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내려와 있는 듯했죠. 시간이 흘러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느껴지며 밝아지기 시작할 즈음, 뜨겁게 타올라 사라지지 않는 온기를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축제장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점점 밝아지며 보이던 춘천의 풍경은 더이상 익숙함과 잔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마임축제의 현장에서 느꼈던 열기는 평범한 나날에 무언가를 생각나게끔 하는 불쏘시개가 되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반복으로 만들어집니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는 작가의 삶도 그나마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루틴의 반복이었죠. 이처럼 권태를 느끼기 쉬운 구조의 일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비일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고서 보이지 않던 일상의 것들이 보이는 순간, 매일 지나다니던 길이 순간 다르게 기억되는 날. 기억에 남는 순간에는 늘 일상과 비일상의 교류가 일어납니다. 둘의 만남은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또 다시 많은 것의 이유가 되죠.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한 풍경이 전혀 새로운 눈을 틔워주었듯, 비일상의 순간은 평범한 일상 속 우연히 찾아오기도 합니다. 만약 반복되는 나날에 지쳐 있다면 오늘 하루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해 집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만나게 될 풍경이 내일을 살아갈 힘을 또 불어넣어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은 늘 이맘때면 떠오르는 춘천에서의 뜨거웠던 기억을 고이 적어봅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예술가의 우연한 순간이 담긴 글과 그림을 보는 이 순간이, 당신의 내일을 움직이는 비일상적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수영

회화작가.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온 탓에 표준어와 사투리가 섞인 억양을 쓰지만, 어엿한 15년차 춘천인.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들을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