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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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9

2023-06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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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좋아하세요?



시, 좋아하세요? 낯설고 어렵다고요? 그래도 우리 외우고 있는 시 하나쯤 있잖아요. 전문은 아니어도 시 한구절씩은 입에 맴돌잖아요. 그러고보면 우린 참 시를 좋아하는 민족 같아요. 약사천변을 걷다보면 춘천 문인들의 시가 걸려있고요.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도 시가 새겨져 있지요. 흥얼거리는 노래도 시에 음률을 더한 것 아니겠어요? 저도 시를 참 좋아하는데요.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나눌 수 있어 시 수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지난 학교에서 가르치던 S는 참 속을 썩이던 녀석이었어요. 가까이 가면 담배 냄새, 술 냄새에 수업시간에는 늘 엎드려 자기 일쑤였죠. 맨날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손과 팔에 문신을 그리던 귀엽고 걱정스런 아이였어요. 어느날 시 쓰기 수업을 하는데 글쎄 이 녀석이 엄청난 시를 쓴 거예요. 평생 나무를 자라게 한 흙의 수고로움을 위해 잎으로 따뜻하게 땅을 덮어 준다는 자연의 순환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으로 연결 지은 시였어요. 의외의 실력에 감탄하며 칭찬하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시켰지요. 그 후로 S는 곧잘 시를 썼는데요. 학기 말에 생기부 기재용으로 장래 희망을 물었습니다. S가 뭐라고 써냈을까요? 네, 다음 두 글자 였지요. ‘시인’


“쌤, 제가 나중에 나이트 삐끼가 되든 공장에서 뺑이를 치든 전 시를 쓸 거에요. 그러니까 제 꿈은 시인이에요.”

아, 그 순간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핑 돌던지요. 흔한 직업군만 진로라고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서였고요. 제 수업이 꿈의 시작이 되었다는 황홀함 때문이었지요. 이 일화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여전히 전 웁니다.

S는 무얼하며 살아갈까요. 여전히 시를 쓰고 있을 거 라고, 열일곱 마음속에 품었던 시를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은 시인의 ‘나는 오늘’이라는 시를 본떠 아이들에게 리라이팅 수업을 해요. 비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인데 긴 설명 말고 아이들의 작품 몇 편 함께 보시죠.


나는 오늘 시계

앞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는 오늘 돌멩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보온병 

힘겹게 모아온 따뜻함을 

전부 끌어안았다


나는 오늘 지우개 

내 위에 쓰인 불안을 

하나 하나 지워내고 싶었다


나는 오늘 연기 

네가 타오르는 바람에 

한참을 떠다녔다


나는 오늘 시계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도서관에 시집 300여 권을 늘어놓고 시집 읽기 수업을 합니다. 짝과 어울리는 시를 찾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선물할 시를 찾아 손글씨로 엽서도 만들어요. 경험이 떠오르는 시를 찾아 시 경험 쓰기도 한답니다. 아이들의 손글씨, 시가 녹아있는 아이들의 삶에 저는 늘 감동합니다.

시 처방전 수업은 각자 고민을 적어내고 그에 대한 처방을 시로 찾아주는 활동인데, 아이들은 콩나물을 못먹는 고민부터 가족 문제, 불안한 진로, 연애 상담까지 진솔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놔요. 십 대의 인생도 얼마나 울퉁불퉁한지요. 아이들은 친구의 고민에 놀랍게도 딱 맞는 시를 찾아내고 정성스레 위로와 격려를 건넵니다. 기타 줄을 짚고 튕기면 손도 대지 않은 줄이 함께 떨릴 때가 있는데요. 주파수가 같아서 그런다는데 아이들의 시를 읽을 때마다 저도 기타 줄이 되고 말아요.

시를 읽지 않는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다르겠죠? 시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만 반짝이고 세밀해지는 풍경이 분명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시를 쥐고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왼손바닥을 펴보시겠어요? 그리고 ‘시’라는 글자를 찾아보세요. 정말 그렇죠? 

네, 저는 계속 아이들을 ‘시인’으로 길러보겠습니다. 

시, 좋아하세요?








김병현

강원애니고등학교 교사. 문학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공명할 때 가장 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