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인구가 최근 5년간 5000여명을 넘어서면서 목표인 인구 30만을 앞두고 있다. 인구의 꾸준한 상승은 유입인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춘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일까. 2023년 ‘봄내’에서는 춘천으로 이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올해 3월 처음 떠나본 베트남 가족 여행 >
“어느 날 퇴근해서 잠이든 아이들을 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예쁜 순간을 내가 다 놓쳤구나”
지난 2일 춘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춘천경찰서 이경택 (44) 경위는 “춘천으로 왜 이사를 왔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아이를 꼽았다.
그는 인생 대부분 시간을 보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2018년 춘천으로 터전을 옮겨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형사과와 기동대로 오가며 경찰이라는 세계를 호되게 경험했다.
이 경위는 “2014년부터 5기동대(동대문) 소속이었는데, 당시에 촛불집회가 매일 열렸다. 버스 안에서 도시락 먹고 집에도 못 들어가기 일쑤였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2016~2017년 서울 광화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100만명의 인파가 모이는 집회가 열리기 일쑤였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집회는 쉬지 않고 열리면서 집에 있는 시간보다 거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시 큰아들이 5살, 돌쟁이 둘째의 육아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무려 2년 동안 자식, 아내와 생이별을 한 것이다. 출퇴근을 위해 하루 2시간씩 지하철에서 낭비하는 시간도 그는 너무 아까웠다고 한다.
비번이었던 2017년 11월의 어느 날. 그는 무작정 용산으로 가 춘천행 기차표를 샀다. 왜 하필 춘천이었냐고 물었더니 “가족들을 위해 찾은 도시가 춘천이었다.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니 수도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교육도시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어려서 대학병원이 두 개나 있는 점도 중요했다”고 말했다.
남춘천역에서 내려 처음으로 들른 곳이 공지천이었다. 그는 ‘우리 가족이 정착할 곳은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처음 춘천에 도착했던 날 찍었던 사진을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 경위는 혼자 춘천 곳곳을 발로 누비며 아내에게 많은 사진을 보냈다. 공지천 경관이 참 예뻤다. ‘이곳에서라면 가족들과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경위는 이후 4차례나 춘천을 다녀간 후 강원도로 발령을 신청했다. 첫 발령지는 화천이었다. 처음에는 무전기가 고장 난 줄 알았다고 했다. 서울에 비하면 신고 횟수가 비교할 수 없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이 즐거우니 집에 가면 늘 맑은 정신이었고 연고가 없으니 가족생활에만 충실할 수 있었다. 화천에서 1년을 보내고 2019년에 춘천으로 발령받았다. 지금 일터와 집은 5분 거리에 불과하다. 그는 “춘천은 오롯이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가정 친화 도시”라고 설명했다.
이 경위는 보석 같은 셋째 아이 하린이를 춘천에서 얻었다. 여름 하(夏)에 물 맑을 린(粼)이라는 한자를 사용했다. 물 맑은 춘천의 여름 한가운데 태어났다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는 “춘천이 좋아서 아이 이름에도 춘천을 담았다”며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아준 춘천 시민들에게 행복한 경찰의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