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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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9

2023-06
#최돈선의 둘레마을 이야기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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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은 동화이고 전설이다

<박사로 호수변 숲길을 거니는 최돈선 시인>



전설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래브라도반도를 지나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숲속 곳곳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빙하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보석처럼 빛나는 에메랄드빛 빙하호들은 달이 뜨면 더욱더 깊은 신비와 황홀감을 느끼게 한다. 그 숲 사이를 명상하듯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다니는 나스카피 인디언의 이야기 또한 원시적인 신비감을 자아낸다.

사냥꾼인 그들은 마을을 이루지 않고 가족 단위로 떨어져 산다. 나스카피족의 독립된 생활엔 부와 권력과 탐욕이 있을 리 없다.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지배받지 않고 그 어떤 타인에게도 위협을 가하거나 종속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스카피인디언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다. 먹을 만큼의 사냥을 위해 숲과 호수와 들판을 걷는다. 남자는 사냥으로 여자는 식물채집으로 각자의 일을 한다. 물론 혼자일 때가 많다. 많아도 두셋 정도이다. 이 홀로 사냥꾼들은 고독하지만, 각자의 내면에 친구를 두고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미스타페오 mista’peo>, 풀이하면 ‘위대한 친구’란 뜻이다.



서면 박사마을과 춘천시 사이

춘천시에서 가장 먼저 해를 받는 마을 서면은 속칭 박사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박사가 배출되었다. 예전 진두津頭 마을엔 오미나루가 있었다. 강 건너 사농동 가래목과 연결된 오미나루는 우마차가 건너던 규모 큰 나루였다. 농부들은 이 지역 특산인 감자와 나물과 땔감 등속을 이 나루를 이용하여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학비로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00년 신매대교가 개통됨에 따라 이 나루는 그 효용가치를 상실했다.

지금은 수상보트장으로 변하여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물보라를 세차게 일으키며 수면을 스쳐 달린다.




기억의 소멸

1986년 이전엔 춘천 시내와 서면 사이로 강이 흘렀다. 그것이 의암댐 건설로 물이 들어차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

춘천 사람들은 소양강 줄기와 대바지강과 나루터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깨끗한 모래와 조약돌과 눈부신 흰빛의 물고기, 모래무지를 잃어버렸다.

졸졸 흘러내리는 여울과 얕은 내와 장대처럼 키 큰 미루나무 숲을 잃어버렸다. 그 미루나무를 산들바람이 와 흔들면, 이파리들이 하얗게 물고기 떼처럼 쓸려가는 소리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특히 우리는 4천 년 전의 선사시대를 잃어버렸다. 중도의 유물들이 파헤쳐져 임시적치장에 버려져 있고, 그 유물이 파헤쳐진 자리엔 플라스틱 레고랜드가 들어섰다.

춘천의 정신과 역사를 내치고 관광을 핑계로 알록달록 조립된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순신간에 세워졌다. 그 어떤 감동도 주지 않는, 곧 바래져 흉물이 될 그것들이 부신 햇살에 허위와 사치를 뽐내고 있다. 서면과 춘천 시가지 사이, 그 호수 한가운데로 돈벌이의 허망한 논리가 춘천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뭉개버렸다.

그건 동심을 이용한 욕망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5월말 붕어떼가 몰려와 산란하는 자리>




<애기똥풀꽃>




미스타페오, 우리 고독하게

내 안에서 나는 미스타페오를 조용히 불렀다. 그러자 그가 입을 열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

미스타페오의 위로는 따뜻했다. 나는 좀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응, 그럴게.


난 오늘 너에게 처음 왔어. 여긴 어디야?

춘천시 서면..., 호수가 있는 도시지.

아, 빙하호인가?

그렇게 내게 질문을 던진 미스타페오는 잠시 침묵했다. 녹색의 에메랄드 빙하호를 떠올리는 듯했다.

아니, 여긴 인공호수지.

아, 사람들이 물길을 막았구나. 반짝이는 빛을 얻기 위해….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습지와 섬과 멀리 빛나는 시가지를 건너다보았다.

나는 미스타페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춘천 봉의산, 대룡산, 삼악산, 그리고 호수 이전의 강물, 화천과 인제에서 오는 물길이 춘천에서 만나고 소나무 원목을 묶은 뗏목이 서울까지 가는 여정, 5월 말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 되면 호수 가장자리 습지로 붕어가 떼로 몰려와 산란하는 모습, 서면의 독특하고 치열한 투쟁의 역사 이야기 등등. 조곤조곤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 모두를 미스타페오는 다 이해했다.




<호수 건너 춘천 중심가 모습>




<춘천 서면의 파크골프장>




어디로 갈까. 

무슨 목적이 있어? 

아니?

그럼 그냥 가.


우린 그냥 무작정 걸었다. 자전거 탄 사람이 우리를 스치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바쁜 사람인가 보다. 

아니, 운동하는 거야.

저렇게 빨리 달리면 주변을 눈여겨볼 수가 없잖아. 저 노란 꽃밭도.

언덕에 노란 애기똥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애기똥풀꽃이네.

음, 그래? 재미있는 이름이야. 꽃도 예쁘고. 


소나무 숲엔 바람이 숨어 있었다.

5월의 신록이 보내주는 바람은 싱그러웠다.

우린 아홉 개의 다리가 얼기설기 이어진 숲에 닿았다. 유아숲 체험원은 텅 비어 있었다. 오늘은 쉬는 날인가 보았다. 그네다리, 세줄다리, 그물다리, 통나무다리, 그리고 지그재그다리, 거미줄다리, 하늘다리, 거북이다리, 네트공중다리가 덩그러니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다리를 넘나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미스타페오도 그러는 것 같았다.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아주 재미있는 꼬마들이야.

미스타페오는 유쾌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 숲속 어디선가 밴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홍비 홍시네 집>




붉은 벽돌의 홍비·홍시네 집 마당엔 구름빵 가족이 모여 동요 ‘낮에 나온 반달’을 연주하고 있었다. 색소폰과 만도린과 흙피리의 울림이 조용한 숲속을 물결쳐 다녔다.

이상하게도 주변에 있는 족도리풀, 할미꽃, 자주색 매발톱꽃, 미선나무꽃이 피어서 지고, 또 피어서 지고는 했다.


여긴 홍비와 홍시네 집이야. 구름빵 가족이 살지.

나는 구름빵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름빵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유쾌하고 즐거운 가족이군. 

미스타페오가 대꾸했다.

응, 홍비 홍시는 짚 앞 나무에 걸린 구름을 발견하게 돼. 아이들은 그 구름을 따서 엄마에게 가져갔고, 엄마는 구름으로 빵을 만들었어. 오븐에 잘 부풀어지고 잘 구워진 구름빵이지. 그 구름빵을 먹고 아이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세상의 친구들을 다 만나게 되지.


미스타페오는 내 이야기를 매우 흥미로워했다. 

아, 아, 아…

그 감탄은 참으로 해맑은 소리였다.


나의 친구 나스카피 인디언도 참 행복한 가족이었어. 난 그와 친하게 지냈지. 그리고 친절한 그 인디언이 죽자 나는 그를 떠났어. 그러던 어느 날, 난 네 부름을 듣고 네 안에 깃들게 된 거야.

미스타페오의 말은 진실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스타페오! 이제 우리 다시 길을 떠나보자.

위대한 친구 미스타페오는 순순히 내 앞의 그림자가 되어 주었다.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서 현지는 있을 것이다. 당신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