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88

2023-05
#봄내인터뷰 #봄내를만나다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농부의 철학을 지키는 농사 파수꾼

농사펀드를 아시나요? 농부에게 투자하고 건강한 제철 농산물로 되돌려 받는 획기적인 플랫폼인데요. 우리에게도 생소한 이 시스템을 최초로 만든 사람, 춘천 출신의 청년이었습니다. 농부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년간 쉼 없이 달려온 ‘유기농밭의 파수꾼’ 박종범 대표를 만났습니다.




<춘천 효자동 농사펀드 별채>



박 종 범

농촌기획자. 1980년 춘천 출신. '농사펀드'를 창업해 현재 농촌과 도시 사이에 필요한 일들을 기획하고 연결하는 기획자로 살고 있다.




지난 3일 춘천 효자동에 위치한 농사펀드 별채에서 박종범(44) 대표를 만났다. 그는 춘천 출신의 농촌기획자다. 2013년 농업에 크라우드 펀딩*을 결합시켜 농사펀드를 만들었고 2014년 주식회사 형태로 (주)농사펀드를 설립했다. 당일 주문해서 다음 날 받아보는 일반적인 쇼핑몰과 달리 농사펀드의 소비자 회원들은 농사 전이나 수확 전 단계에서 미리 농산물을 구매하고 수확기에 자신이 구매한 농산물을 받는다. 농부들은 수확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수입이 생기고 가격 폭락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 대표는 “농부는 다른 걱정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사 자금 마련과 농산품을 판매할 판로 개척이 막히면 농부는 빚쟁이도 되고 장사꾼도 된다”라며 “농부에게는 영농자금을,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농산품을 연결시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3년은 온라인에서 크라우드 펀딩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시기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그의 능력도 눈부시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농업에 연결시킨 통찰도 대단했다. 노하우를 묻자 “저에게는 ‘농사라는 필터’가 있다” 라고 답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농사’가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 배경엔 유년시절 외할아버지댁 농사를 도왔던 생생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춘천 우두동의 대농이었다. 박 대표는 “당시 할아버지께서 일꾼들을 위해 매주 잔치를 열었는데 그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 사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부터 정서적으로 ‘농촌’에 대해 이질감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와 방식이 다를 뿐, 흔히 농촌을 불쌍하게 보지 않는 기본태도를 만들어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농사펀드의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크라우드 펀딩 :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의미. 군중을 뜻하는 ‘크라우드’와 자금조달을 뜻하는 ‘펀딩’의 합성어다.






<농사펀드 웹사이트 주소 www.ffd.co.kr>




박 대표가 농촌 일을 한 것은 농사펀드가 처음은 아니다. 그 전에는 농촌체험 사이트 ‘농촌넷’ 전략기획 팀장으로 정보화마을 운영사업단의 마을컨설팅 업무를 담당했고, 농수산식품 유통기업 ‘총각네 야채 가게’ 온라인 쇼핑몰 창립 멤버로도 활동하면서 농촌 문제에 눈을 떴다. 그가 농촌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빚 안 지고 농사짓고 싶다’, ‘판매 걱정 없이 내 철학대로 농사짓고 싶다’였다. 농부들은 농사 자금 대출을 받아 농사를 짓고 나중에 농산물을 팔아서 갚는데, 수익구조가 낮다 보니,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가는 경우가 많다. 2013년 농사펀드 첫 농부인 조관희 씨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충남 부여군에서 쌀농사를 짓는 조 씨는 농약 중독을 앓고 난 뒤 친환경 농법으로 벼 재배 방식을 바꿨다. 하지만 판로 확보가 어려워 재고가 쌓였고 부채가 늘었다. 박 대표는 조씨에게 농사펀드를 제안했고, 2013년 410만원을 목표로 농사펀드를 모집해 투자자들로부터 239만원(58%)을 펀딩 받았다. 첫 도전은 실패였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 투자자 21명에 그쳤다는 말을 듣고는 지인들에게 홍보했으면 어땠을까 물었더니 그는 “내가 바보같았다” 며 멋쩍게 웃었다. 이어서 “속으로는 사실 이 사업이 진짜 가능한 걸까 궁금했고 정확한 데이터를 얻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의미있는 도전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계도 빠져서 들어가기 힘든 고래실* 논에서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 없이 농사짓는 농부의 진심은 결국 통했다. 이듬해에는 목표액을 760만원으로 정해 펀드를 모집, 총 1,299만원(171%)을 투자 받아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지금도 조 농부의 고래실논쌀은 2023년 말까지 예약이 다 차 있는 상태다.






고래실 :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 골짜기 사이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논을 말함 






<농사펀드 회원과 함께한 조관희 농부 고래실논 손 모내기>







농사펀드의 농부는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적정 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부들만 선별한다. 토양까지 오염시키는 제초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현재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거나 친환경 농사로 전환하고 있는 농부, 성장촉진제나 성장억제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자연의 속도로 농업을 하는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다. 농부발굴에는 품종, 환경, 기술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세 가지 항목이 농산물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후 투자할 농가가 정해지면 에디터들이 현장을 찾아가 꼼꼼히 취재한다. 그들은 농부가 발견하지 못한 포인트를 찾아 소비자들에게 알린다. 어떤 농부가 농사짓는지, 환경과 토양은 어떤지, 농사를 짓는 과정이나 가축의 먹이까지 세세히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다. 농사펀드의 에디터들은 전공 상관없이 먹거리에 관심이 많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해와 달, 별을 보며 자랄 수 있도록 키웁니다. 자연축산 돼지’라는 말을 보고 어떻게 클릭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에디터들이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농부이야기에 끌려 농사펀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제철’ 코너에는 예약해서 먹는 진짜 계절의 맛이라는 설명이 제목 옆에 나란히 적혀있었다. 하우스 입구마다 벌통이 놓여 있다는 이일웅 농부의 참외를 주문했다. 벌이 키워서 씨까지 통통하게 찬 참외라니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3kg 결제 버튼을 눌렀다. 참외는 수확기라 그런지 1주일 안에 받아볼 수 있었다. 조직이 치밀해서 이빨을 튕겨내는 느낌의 권두보 농부의 육보딸기와 제수용 과일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해 기른다는 추황배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6월이 되어야 맛볼 수 있는 공상길 농부의 유기농 양파에는 크기 선별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크고 작은 것 모두 저마다의 쓸모가 있습니다’라는 에디터의 한 줄 글이 반짝 눈에 띄었다. “보통 양파는 크기에 따라 상중하품이 나뉘는데 생각해 보면, 농부는 햇빛, 물, 땅 모든 조건 을 동일하게 주고 똑같이 키우지 않냐”는 박대표의 말까지 듣고 나니 “맞네, 농사는 원래 그런거야”라며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박종범 대표는 이번 달 말 춘천에 농사펀드 별채(가칭)를 오픈한다. 이 공간은 시민들과 지역 농부를 연결하는 장소로 꾸며질 예정이다. 규모는 17평 5홉 6작 9재다.(17.569평) 작은 크기의 51년 된 구옥을 그의 아내와 둘이 손수 개조했다. 집 앞으로 공지천이 흐르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구옥은 마당에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아늑한 구조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춘천만의 로컬 에디터 과정을 열고 싶고 춘천에 계신 농부, 지역 활동가들과 꾸준히 모이고 싶다” 라며 “먼저 농사펀드에 올라온 최고의 먹거리들을 함께 먹고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