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유학이라고 하면 외국이나 대도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정반대로 춘천으로 농촌 유학을 오는 아이들도 있다. 교육도시를 선포하고 재도약을 꿈꾸는 춘천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이다. 이번 호에서는 사북면에 둥지를 틀고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농촌 유학생 원준이와 귀농한 해나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3월 6일 사북면 고탄리 춘천별빛농촌유학센터>
<매일 송화초 운동장과 센터 마당에서 놀면서 배우는 고탄리 아이들 >
<마을 어르신 도시락 배달 >
서울에서 맞벌이 생할을 하는 이원준(12) 군의 부모는 작년 3월 아이를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의 춘천 별빛 농촌 유학센터로 보냈다. 공교육인 송화초와 마을의 센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을 유학 캠프를 보내며 확인, 결심을 굳혔다. 원준이 엄마 정혜란(43) 씨는 “농촌 유학은 도시 학교에 부적응한 아이들이거나 공부를 포기하고 온다는 편견이 있다” 며 “아이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은 엄마로서 서울보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해 교육의 도시 춘천으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술치료사인 정씨는 일괄된 교육시스템 안에서 아이들 개인의 특성이 매몰된다고 느꼈다. 서울에서 원준이는 피아노, 킥복싱, 영어 학원까지 바쁜 하루 하루를 보냈다. 천천히 다가가고 바라보는 아이인데 서울의 교실은 빠르게만 돌아갔다. 춘천별빛농촌유학은 원준이에게 맞는 교육이 무엇일까 고민을 거듭하던 엄마가 찾았던 정답이었다.
정 씨는 지난해 7월 춘천으로 이사를 왔다. 원준이가 엄마랑 가까이 있고 싶다고 해서 왔지만 아이는 기숙사 생활이 재미있다며 아직 시내로 나오지 않은 상태다. 별빛유학센터의 유학생과 귀농귀촌인구는 코로나19가 극성이던 202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이는 춘천에서 양질의 교육 혜택을 누리고, 부모는 도시의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준이 엄마는 주 3회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 더 일찍 데리고 오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만큼 원준이 가족에게 춘천 생활은 만족스럽다고 한다. 송화초와 별빛센터의 프로그램도 유학생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1회에 10만원 씩 하는 목공 수업이 센터에서는 매일 무료로 열린다.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던 아이들이 지금은 전문가 못지않게 톱과 직소를 능숙하게 다룬다. 센터 마당에 있는 흔들그네도 아이들이 손수 만든 작품이다. 성취감은 덤이다. 정 씨는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문화 인프라를 활용해 원준이를 키웠지만 춘천에서는 그 이상의 혜택을 받고 있다”라며 “유명 사립초등학교에서도 이 정도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깜짝 놀라 깨어났을 만큼 봄기운이 완연했던 경칩인 3월 6일 사북면 별빛마을센터를 찾았다. 이날 오후 송화초등학교 전교생 40여명은 공부를 마친 후 센터 마당에 모여 봄기운을 만끽했다. 센터 마당 곳곳에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 가운데 유독 생기가 넘치던 송해나(13) 양은 “이곳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초등학생”이라며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했다. 해나네 가족은 7년전 경기도 의왕에서 춘천으로 이사를 온 부모체류형 농촌유학 가족이다. 아이 혼자 기숙사에 머물며 공부하는 농촌유학생인 원준이와는 달리 부모가 함께 머무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해나의 오빠들은 6학년과 4학년, 해나는 7살이었다. 해나의 어머니 박상순(46)씨는 “남편의 친구가 이 마을에 살아서 가끔 놀러왔는데 눈이 많이 내리던 2월 고탄의 풍경에 반해서 그날 이사를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탄에 오기 전에는 도시에서 학원가기 싫어하는 아이들과의 실랑이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은 아예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해나네는 귀농 가족이다. 3천 평의 땅을 빌려 양파와 고추, 들깨, 배추를 기른다. 센터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은 “해나네 양파가 유난히 달다”며 농사 실력을 칭찬했다. 박씨는 “처음 2년 동안은 농사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마을 어르신들에게 모르는 것을 계속 물어봤다”며 “어르신들은 농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농사 질문에 대한 답을 친절하게 잘 알려주신다.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부부는 조만간 사과 농사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원준이와 해나가 다니는 송화초등학교는 2009년 전교생 15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다. 그러나 지금은 전교생이 42명에 달한다. 마을에서 별빛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고부터 생긴 변화다. 농촌 유학생과 함께 해나네 가족처럼 학교를 보고 귀농한 학부모도 많이 늘었다. 박 씨는 “아이를 자연 속에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최우선이었던 만큼 센터가 없었다면 이 곳으로 쉽게 이사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마을 전체가 아이를 함께 키워주기 때문에 부모들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농촌유학은 품앗이와 두레는 물론이고 관혼상제조차 희미해진 농촌마을에서 교육을 매개로 시작된 마을공동체 복원 도전이기도 했다. 이행재 고탄리 이장은 “지역 청년들의 노력 덕분에 젊은 세대가 늘면서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되살아났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해나 아버지 송현빈(46) 씨는 우두동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한다. 그는 “오전에는 농사짓고 오후엔 학원에 나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도시에 살 땐 새벽에 애들 얼굴 잠깐 보고 출근했는데 지금은 항상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춘천살이의 장점은 바로 여유롭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에서 온 원준이 가족에게도 춘천은 문화의 천국이다. 원준이 모자는 주말이면 춘천 시내 나들이를 한다. 박물관 전체를 전세 낸 듯 하루종일 여유롭게 관람한다. 서울에서는 예매조차 어려운 오페라를 춘천에서는 여유있게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정혜란 씨는 “춘천은 아이에게 자연환경도 제공하면서 도시의 삶의 질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교육도시라고 생각한다” 라며 “춘천이 제공하는 인프라가 좋아서 조금 더 살아볼까 마음을 바꾸는 중”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은 송화초 아이들이 모두 자존감이 높고 독립적이라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유년 시절을 잘 보낸 아이들은 결국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고탄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