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1.19. 온의동 공지천 호돌이 스케이트장>
춘천이 빙상의 도시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얼음을 얼리는 기술이 부족했던 1970~80년대 춘천 공지천은 전국에서 유일한 실외 빙상경기장이었다. 당시 공지천에선 전국 단위 스케이트 대회가 펼쳐졌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나 스케이트를 즐길 만큼 대중적인 스포츠로 인기를 끌었다. 원조 빙상 도시인 춘천시가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을 대체할 빙상장 유치를 통해 옛 명성 회복에 나섰다.
스케이트 DNA 보유 도시 춘천
“춘천사람이라면 스케이트 실력은 기본이지”후평동에 사는 한명섭(69) 씨가 낡은 스케이트를 꺼내며 말했다. 지금은 조각공원이 들어선 공지천은 전국적으로 소문난 천연 아이스링크였다. 별다른 즐길 거리가 없던 시절, 공지천은 대자연이 만들어준 춘천 최고의 레저 파크였다. 그는 “어릴 때는 소양1교와 2교 사이에서 타다가 공지천으로 옮겨갔지. 얼마나 추웠는지 강이 꽁꽁 얼어붙어서 빙상경기도 하고 사람 참 많았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가 스케이트를 타던 70~80년대의 공지천은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다. 당시에는 스케이트를 못 타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탔다. 수온이 낮아 조금만 추워도 얼어붙곤 했던 공지천 천연 아이스링크 위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얼음 트래킹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도 많았지만 스케이트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강바닥 얼음판을 지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80년대 초등학생이었던 김아영(42) 씨도 스케이트에 서린 추억이 있다. 그는 “승리욕이 남달랐던 아빠가 다른 애들보다 잘 타야 한다며 집에서 맹연습을 시켰다”라며 “카키색 군용담요를 몇 겹 접어 깔아놓고 그 위에서 기본 자세를 잡고 코너 도는 동작을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라며 크게 웃었다.
<1986년 1월 10일 신북읍 지내리 저수지 춘천교육대학교 부속국민학교 빙상부 동계 강화훈련 모습>
춘천의 빙상열기
“여기는 춘천 공지천에 마련된 특설링크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스케이트 경기 실황을 중계하여 드리겠습니다”(1971.대한뉴스) 잡음 속에 들리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1971년 춘천 공지천 특설 링크에서 열린 제52회 전국동계빙상대회를 소개하고 있다. 탁트인 3만 평의 얼음판 위에서는 매년 대회가 열렸다. 춘천에서 열린 첫 대회 기록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춘천 소양강 스케이트 대회다. 이후 지금의 소양1,2교 아래에서 조선빙상대회가 이어졌고, 6.25 전쟁 이후에는 공지천으로 옮겨 치렀다.
공지천은 물이 맑은데다 균일한 냉기로 빙질이 고르고 두껍게 얼어서 전국 최상의 자연링크로 꼽혔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중 있는 빙상대회가 으레 춘천에서 열렸다. 특히 1969년 부터는 연이어 3년 동안 이곳에서 동계체전이 열렸는데 이를 계기로 아예 동계체전 영구개최지로 정해버리자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춘천의 빙상 열기는 대단했다. ‘스케이트를 타지 못하는 춘천시민은 간첩’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여서 춘천국민학교와 교대부속초등학교 빙상팀이 전국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야간에는 조명까지 밝혀놔서 밤늦도록 데이트를 즐기거나 퇴근 후 여가를 즐기는 스케이터들이 많았다. 에메랄드 하우스 옆 강둑에는 빙상대회를 관람할 수 있는 관중석(스탠드)이 있었는데 대회가 열릴 때는 관중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다같이 모여서 볼 수 있는 스포츠가 없던 시절 빙상대회는 춘천 시민의 큰 볼거리였다.
<한명섭 씨가 낡은 세이버 스케이트를 꺼내는 모습>
<1971년 1월 29일 공지천에서 개최된 '제52회 전국체육대회 동계빙상대회' 대한뉴스 방송 화면>
국제스케이트장, 빙상수요 넘치는 춘천으로
춘천에서 열리던 대회가 점차 줄어들게 된 계기는 1973년 태릉 스피드스케이트장이 생긴 탓도 있지만 큰 이유는 공지천의 수온변화 때문이었다. 소양강댐이 생기면서 사철 섭씨 5~6도의 심층수가 흘러와 강추위가 몰아쳐도 제대로 얼지 않았던 것이다. 공지천 링크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는 1986년 1월 열린 제1회 전국초교빙상대회였다.
<1988.1.7. 춘천 내 스케이트 판매점>
<1985년 1월, 저 멀리 공지천의 명소였던 '호수의 집'이 보인다.>
이후 송암동에 세운 의암실외빙상장이 2010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빙상의 불씨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2016년 부터 공지천, 춘천시청 등 야외 스케이트장을 조성해 시민들의 스케이트 세포(DNA)를 깨웠다.
스케이트 왕국 춘천의 명성을 찾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3월 10일 춘천시가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방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 버금가는 국제 규격을 갖춘 아이스링크를 춘천에 조성하는 방안에 대한 당위성을 피력했다. 수도권 내 유일한 국제 규격 스케이트장은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뿐이다. 하지만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내년에 철거해야 한다.
시는 송암스포츠타운 일원의 부지 4만㎡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춘천은 빙상의 메카로서의 역사성과 더불어 수도권 근접의 지리적 이점을 강조하며 도전 중이다. 송성훈 강원도빙상연맹 회장은 “춘천은 인구의 50% 이상이 스케이트를 탔던 추억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빙상 수요가 이렇게 큰 도시는 없을 것”이라며 “국제스케이트장이 생기면 시민스케이트 저변이 넓어지고 자연스럽게 예전 빙상 명성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널빤지로 만든 조악한 썰매를 쇠꼬챙이로 찍어가며 얼음을 지친 기억. 언니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내 딛던 첫 스케이트의 추억까지 하나씩 모은 시민의 이야기가 빙상의 메카를 쌓을 재료가 된다. 국제스케이트장 춘천 건립은 행정이 부르고 시민들이 응답해야 할 공통 과제다. 빙상의 도시 춘천을 응원한다.
잠깐! 스케이트 브랜드에 얽힌 추억
'전승현을 아십니까'. 우리나라 최초로 스케이트를 만들어 상업화한 분. '전승현 스케이트'는 모든 어린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문제는 부모들이 선뜻 사주지 못할 정도로 고가의 제품이었다는 것. 스케이트의 대중화는 '세이버'와 '전승현'이란 스케이트가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화 되면서 시작됐다. '전승현 Z'상품이 2만5,000원 정도했다. 1965년도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35원이었으니 스케이트 한 켤레를 사려면 자장면 714그릇의 값을 치러야 했다. ‘전승현’이라는 브랜드의 스케이트를 소유한 아이는 으쓱댔고 대여 스케이트를 신은 아이는 발이 맞지 않아 쩔쩔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