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36

2019.1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25
구봉산 카페촌
-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사회 변화가 이뤄진 격랑의 시기에 조용한 ‘봄의 고장’ 춘천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은 1970년부터 40여 년간 토박이 언론인으로 이 고장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를 지켜본 필자가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숨은 일화와 뒷이야기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팔색조 닮은 구봉산 일대 이색 카페촌

“차 한 잔 드시러 오세요”




춘천 외곽 잼버리 도로 부근에 휴게소 등 찻집이 늘어남에 따라 춘천 제일의 드라이브 코스로 자릴 잡았다 (1999)




잼버리대회 보조수송로가 될 팔미리~동면을 잇는 외곽도로가 개통되어 서울에서 춘천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홍천~속초로 갈 수 있게 됐다. (1991)


순환대로 개통과 함께 둥지 틀어


봄내골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 대룡산(해발 899m)이다. 이 줄기에 있는 구봉산(九峰山·441m)은 가리산(1,051m)에서 뻗어온 대룡산의 만천리 쪽 끝자락에 있는 심산유곡이었다. 올망졸망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디 인적조차 드물었던 외딴 두멧구석이 봄내골을 대표하는 카페촌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부터였다. 세계잼버리대회(1991년 고성 개최)를 계기로 외곽순환도로(일명 잼버리도로)가 뚫리면서 숲속에 과수원과 밭이 널려 있었던 한적한 구봉산 둔덕이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다.


동면 감정리와 동내면 학곡리를 잇는 잼버리도로가 개통된 것은 당시 건설부 차관이었던 이상룡 전 지사의 공적이 컸다. 하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아 어느 누구도 선뜻 카페의 거리로 발돋움하리라고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속칭 썸(some) 타고 싶은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고 즐겨 찾는 이색 카페거리로 젊은이들 사이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




거대한 춘천분지 한눈에 조망


전망대를 중심으로 도로를 따라 길게 뻗어난 구봉산 카페촌은 어느새 다양한 모습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군 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산 중턱에 둥지를 틀어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춘천 분지(盆地)와 시가지 전체를 비롯, 멀리서 흐르는 옛 소양강 줄기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유럽풍의 종탑을 갖춘 카페는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 쾨르 성당’을 연상시킨다. 테라스와 정원을 잘 갖춘 업소도 즐비하다. 주위의 자연풍광을 감상하며 차와 식사를 곁들인 주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석양이 뉘엿뉘엿 붉게 물들기 무섭게 어둠이 깔린 후에는 봄내골 북쪽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화악산(1,468m) 정상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는 불야성을 이룬 구봉산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트린다. 또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무더운 여름철에는 기온이 시내보다 2~3도 낮다.


자연풍의 상큼한 솔바람이 더위를 식혀 주고 붉은 노을과 주변 풍경이 시간과 절기(節氣)에 따라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래서 숲속에서 짝을 찾기 위해 다양한 색깔의 깃털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팔색조(八色 鳥)와 흡사한 매력을 지닌 곳으로 꼽힌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각 업소마다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넘쳐나는 차량들로 항시 도로변조차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잼버리도로가 뚫리면서 구봉산 주변에 초가와 기와집을 개조해서 소박하게 꾸민 허름한 옛날 찻집이 젊은이들과 연인들 사이에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게 효시였다. 그 후 뛰어난 전망과 풍광을 등에 업고 이색적인 서구식 카페가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누가 권유하거나 시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렁저렁 4반세기 동안 몸집을 불려 왔다.


경남 거제의 ‘바람의 언덕’, 가평의 ‘쁘띠프랑스’, 목포의 ‘유달산 자락’과는 다르다. 국내 대표적인 카페촌인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지만 깊은 밤의 구봉산의 야경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에 떠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바로 시시각각 바뀌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가 이곳을 찾게 만드는 매력 포인트다. 그래서 요즘 봄내골 사람들이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꼭 안내하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제12회 춘천관광사진공모전 입선 김재득 <구봉산 카페거리에서>



봄내골은 풍수지리의 완결판


봄내골의 진산은 봉황새가 비상하는 모습의 봉의산(301.5m)이다. 우백호는 삼악산(655m)과 북배산(886m)이요, 좌청룡은 대룡산을 이른다. 안산인 안마산과 시가지를 휘감아 흐르는 두물머리는 예부터 사람 살기 가장 좋은 도읍지임을 드러내는 장엄한 봄내골 풍수지리설의 완결판을 이뤄 왔다.

이런 거대하고 수려한 지세(地勢)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구봉산 밑자락에는 한때 ‘온천이 터졌다’고 법석을 떨었던 만천리(萬泉里)가 버티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1914년) 만법리(萬法里)와 천곡리(泉谷里)의 두 머리글자를 따서 통합시킨 행정리이다. ‘만법’은 만법사라는 절이 있었고 ‘천곡’은 좋은 샘물이 난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느랏재 쪽은 쭈욱 뻗은 대룡산 줄기가 갑둔이 고개에서 봄내골 쪽으로 우뚝 솟아났다. 명봉의 ‘순정마루’ 아래쪽에 구봉산은 기린목처럼 기다란 능선을 타고 서 있다. 뒤쪽은 구봉산과 연달아 이어졌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감정리 막국수마을의 ‘연산 골’이 이어진다.


불쑥불쑥 솟아난 아홉 개 봉우리에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활공장과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마련돼 있다. 전망대 건너편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정상을 거쳐 명봉까지 이어지는 코스가 주류를 이루고 산행 소요 시간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둔덕에 있는 강원도인재개발원 아래쪽 만천리 버덩에도 여러 가지 맛깔스러운 음식점들과 전원주택, 퍼블릭 골프장이 널려있다.


경춘고속도로에 이어 전철이 복선화되고 ITX-청춘이 개통되자 몸집이 부쩍 불어나고 있는 ‘구봉산 카페촌’을 보다 짜임새 있게 개발해야 한다는 지역 여론도 비등하다.

차도와 인도가 갖춰져 있지 않고 정기노선버스가 제대로 운행되지 못해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막간을 이용하거나 머무는 시간을 연결 지을 즐길 거리가 모자라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011년 구봉산 자락에 들어선 인터넷 업체 네이버의 데이터센터(IDC) 입주 문제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취득세 감면과 기반시설비 등을 지원해 알토란 같은 10만여㎡의 부지에 들어섰지만 일자리 창출과 고용 효과, 지방세 수입 등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주위 풍광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역 주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중이다.




봄내골 ‘몽마르트르’로 가꿔 나가자


프랑스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빠트리지 않고 꼭 들리는 곳이 북쪽에 있는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다. 높이 130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은 파리 분지(盆地)의 가운데 자리잡아 시가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지난 19세기까지도 포도와 밀밭, 석고광산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수십 개의 풍차가 돌아가던 목가적인 풍경을 지녔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궁핍한 서민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꼬여들기 시작했다. 피카소도 청년 시절 이곳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고 세계미술사를 이끈 대가와 예술가들이 창작의 둥지를 틀었다.


이런 소문이 알음알음 알려진 후에는 등용을 바라는 수많은 무명의 화가와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아지트를 만들었다. 이것이 전 세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연간 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거리와 길모퉁이에서 이젤을 펴 놓고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직접 보고 카페에서 차 한잔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 또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의 풍부한 르네상스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피렌체는 메디치가문의 막대한 후원 아래 화려한 예술을 꽃피워 문화예술기행에 빠트릴 수 없는 코스가 되었다.


구봉산 카페촌도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뿐만이 아니라 그 위에 예술의 꽃을 피우고 새로운 옷을 입히면 어떨까. 마침 봄내골을 ‘문화특별시’로 만들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춘천시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그래서 차제에 구봉산 기슭에 예술인 등이 큰 어려움과 거리낌 없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모멘텀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된다.


봄은 누가 애타게 부르지 않았는데도 우리 곁에 차곡 차곡 쌓여 모습을 드러낸다. 새해를 맞아 조그만 노랑나비의 가냘픈 날갯짓이 한낱 미몽(迷夢)이 아니라 더 크고 새롭고 포근한 봄바람을 몰고 올 날을 꿈꿔 본다.








글 김길소(본지 편집위원·한국전래오락연구소장) 사진 강원일보

춘천 태생. 1970년 강원일보사에 입사해 편집국에서 강원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했다.

편집국장, 논설주간, 상무, 전무이사를 지낸 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위원과 부위원장으로 언론사와 피해자의 중재 역할을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