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86

2023-03
#봄내인터뷰 #봄내를만나다
이종화 위기 협상 전문가
사람을 살리는 일, 나를 살리는 삶




이종화

위기 협상 전문가. 1963년생 춘천 출신. 경찰대학교 1기 졸업생으로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리옹2대학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경찰대 교수로 재직하며 ‘위기 협상’ 전문화 과정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했다. 경찰청 대테러센터 인질 협상관을 역임했고, 현재는 위기 협상 컨설팅 회사 CNS(크라이시스 네고) 대표로 활동 중이다. tvN <유 퀴즈 온더 블럭>,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에 출연했으며 영화 <협상>의 자문을 맡은 바 있다. 2023년 봄학기부터 한림대학교 국제학부에서 위기 협상 강의를 진행한다.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2016)와 영화 <협상>(2018)에서는 인질범과 대치하는 위기 협상팀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위기 협상관’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원하는 걸 요구하는 상황에서 냉철함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감정 줄다리기를 한다. 보는 것만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직접 상황을 이끄는 이들은 어떤 심장을 지녔을까. 이번 호에서는 국내 1호 위기 협상 전문가 이종화 대표를 만났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미국을 오가며 계속 공부하셨어요.


직책은 영원하지 않잖아요? 계급장이 겉옷 같다고 생각했어요. 겉옷을 벗으면 ‘내가 가진 건 뭘까’ 하는 고민을 일찍부터 했어요. 나만의 전문지식이 아닐까 생각했고 ‘난 전문가가 돼야겠다’ 결심했죠. 그때부터 전문지식에 몰입한 것 같아요.



어떤 전문지식에 끌리셨는지 궁금해요. 


2006년 미국 FBI 아카데미 연수에 참여하면서 위기 협상 분야에 대해 알게 됐어요. 2009년 NYPD(뉴욕 경찰)가 주관하는 협상 교육을 듣고서는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 보였습니다. 이후 경찰대에 위기 협상 전문가 과정을 만들고 협상가(negotiator) 개념을 전파하기 시작했어요. 갈등이 일어났는데 물리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한다는 점이 멋졌죠.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2013년에 위기 협상 연구센터를 만들고 경찰서에 위기 상황 시 부르라고 했어요.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연락이 없길래 우리나라에서는 필요가 없나 싶어서 고민이었죠. 그런데 사건이 터졌어요. 2014년 3월, 압구정역 빵집 사건이었어요. 50대 남자가 빵집에 침입해 손님을 인질로 잡고 자기 목에 칼을 대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어요. 나중에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로 인질범은 불면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정신 질환자였어요. 신문하듯 상황을 처리하기보다는 인질범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대화했어요. 심리 안정을 유도하는 전략을 펼쳤고 다행히 사건 발생 3시간 만에 인명 피해 없이 사건이 종료됐죠. 현장 지휘관인 경찰서장과 협상 교육을 받은 경찰관의 공조로 안전하게 인질 사건이 해결된 최초의 사건이었어요. 같은 해 육군 전방 GOP에서 동료를 살해하고 자살 시도한 사건, 아산 시청에 차를 몰고 난입해 자살과 폭파로 위협한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위기 대응의 중요성이 커지고, 세월호 참사로 초기 대응 인식이 중요해지면서 전국 각 지방경찰청에 위기 협상팀이 조직됐습니다.




<위기 대응 현장과 개조된 위기 협상 차량 내부>

 










 


우리나라의 위기 협상을 연구하고

교육 과정을 만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좀 달라졌나요? 


처음엔 실무에 도움이 될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교육을 들은 형사들도 ‘그런 말로 소통이 되겠습니까? 그게 통하겠어요?’ 라고 반문했죠. 시간이 지나고, 교육 내용이 실제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적용되니까 형사들도 동조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우리나라의 인질 사건은 ‘가정 폭력’과 ‘자살 시도’ 두 경우가 가장 많아요.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처럼 범죄자들이 돈을 요구하며 인질극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고, 현직 경찰관들이 일선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현장은 가정 폭력에 의한 인질 사건, 자살 시도 사건이에요. 건물 옥상에 올라간 자살 시도자를 만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머리로 알고 있어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당황하게 돼요. ‘자살 시도 중재 협상 교육’도 그래서 만들었어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경찰관, 소방관 이외에도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 사회 복지 관련 종사자분들도 위기자*의 마음을 읽고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알면 자신도 보호하고 위기자도 구할 수 있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특히 중요하게 여긴 게 있나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전문가의 정의도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전문가는 같은 분야의 동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에요.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고 내가 잘났다고 말하는 것보다 동료들이 “그 친구 진짜 잘해”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리고 나를 잘 돌보는 게 중요합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돌보고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들었을 때 자신감이 생기고 내 인생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커지죠. 무엇보다 곁가지가 아닌, 핵심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그렇게 지금까지 왔어요. 

 




* 위기자 자살 시도자, 정신 이상자, 가족 인질범 등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탱고를 즐기는 모습 



이종화 대표는 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마음을 다해, 전문가의 영역에 기어코 발을 디딘다. 테니스, 스키, 요트, 볼링, 수영, 승마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고, 몇 년 전부터는 탱고의 매력에 빠져 1년에 한두 달을 해외에서 보낸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보는 모습에서 그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영양분을 듬뿍 받으며 단단하게 성장했구나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준 영양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