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 2녀 모두 출가시키고 그림으로 하루를 여는 김옥순(90) 할머니.
몇 년 전 할아버지마저 떠난 시골 집의 빈 공간을 그림으로 채우고 있다.
작년 7월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해 채 일 년이 되지 않았지만 아흔 살 할머니의 그림은 화가의 작품 못지않은 실력으로 감동을 준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구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세밀하게 스케치북에 그림을 한 컷씩 담아내고 있다.
지난해 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가 건네준 도형에 색칠만 하는 걸 시작으로, 자신감이 생기고는 사물을 직접 가져다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오이를 매달아 놓기도 하고 잡초를 뜯어다 놓고 그리기도 했다. 노트에 연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색연필은 물론 형광펜을 사용해 작품으로 완성한다. 소재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과 새이다. 할머니를 위해 자녀와 사위들이 스케치북과 도구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씩 완성한 작품이 어느덧 100여 점이 되어 차곡차곡 집에 쌓였다. 뇌경색으로 인해 한쪽 시력이 좋지 않지만 그림으로 취미가 생기고 치매 예방에 좋다는 김옥순 할머니. 할머니의 작품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서면 서상보건진료소에 전시되고 있다.
가정 방문차 집에 들른 직원이 그림을 보고 '꽃과 새'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보건진료소를 방문한 주민들은 벽면에 전시된 30점의 그림을 아흔 살의 김옥순 할머니가 그렸다는 사실에 놀란다. 할머니는 이제 이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열정과 그림 속 엄숙함에 담긴 할머니의 도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자녀 뒷바라지와 농사일로 구십 평생을 꾸려오다가 우연히 시작한 그림은 이제 친구가 되어 건강한 노년을 선물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