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은 목을 빼고 담장 너머 마당을 살피며, 슬렁슬렁 걷는 게 어울린다. 좁은 골목에 담겨있는 삶의 풍경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봄볕이 따스한 마당가에는 쏘옥 고개를 내미는 연둣빛 새순들이 싱그럽다. 향교 옆 언덕빼기나 망대가 있는 아리랑골목, 효자동벽화마을과 고양이 상상골목, 새말고개 등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그 사이로 춘천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관과 망대, 성당들이 쉼표처럼 발길을 잡는다.
강원도지사 구 관사(등록문화재 제 107호)
향교옆길 언덕을 올라 춘천시내를 조망하고 예전 춘천여고 뒷길로 내려서면 길 건너가 춘천시청이다. 1969년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 건축(1972년)했다는 봄내극장과 교회건물에서 변신한 춘천미술관이 나타난다. 미술관 앞 건널목을 건너면 바로 구 공관으로 이어진다. 1959년 건립되었다는 도지사 관사 입구에는 예전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경비초소가 있었다. 지금은 춘천시청이 신축되면서 춘천시의회 앞에 있다. 이곳은 군 공병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고 하는데, 출입구가 특이하다. 돌출된 V자형 기둥은 측면 출입을 하도록 한 것으로 군 지휘소나 관공서 형태라고 한다. 1998년까지 도지사 관사로 사용되었다가 1999년 춘천문화원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시청 별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내부는 변형되었다. 지금은 춘천시 마을자치 지원센터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변이 잘 정리되어 외부는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
춘천시청
1946년 6월 1일, 대한민국에서 12번째로 춘천부(시)로 승격되었다. 조선 5대 유수부 중 하나였고 강원도의 수부도시이다. 조선시대 춘천관아는 지금의 강원도청이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 말 고종 때 나라의 유사시를 대비, 유수부(1888년)로 격상시켜 춘천 이궁(춘천관아 문소각) 이 설치되었다. 1895년 춘천부청이 되었다가, 1896년 행정개편으로 원주에 있던 강원감영이 폐쇄되고 춘천관아에 강원도청이 들어왔다. 같은 곳에서 도청과 시청 업무가 진행되다가 춘천시청은 1957년 지금의 옥천동에 건립되었다. 이후 2016년 기존 청사를 철거, 2018년 신축청사를 지어 이전했다. 춘천시민의 다양한 얼굴표정이 담긴 2018인 ‘춘천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중앙시장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군복시장과 양키시장이 생겨났다. 1952년 3월 미군의 도움으로 중앙로 공설시장에 점포를 건축, 1954년 2월 중앙시장이 건설되었다. 1960년 7월 주식회사로 규모가 확장되었고 중앙시장 발전과 함께 요선시장(1956년), 서부시장(1957년)이 잇따라 건립되면서 상권이 확장되었다. 춘천의 전통시장으로 지금은 낭만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전 양키 시장은 수입상품 코너로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앙시장 입구
망대와 망대골목
망대골목은 일제강점기 야산 위에 세워진 망대(화재감시탑)에서 유래한다. 사방이 탁 트인 이 산위에서 춘천지역의 화재를 감시했으며, 인근(약사동)에 있던 춘천교도소 감시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본래 이 일대는 ‘불종대’, ‘종대거리’라 불렸다. 불종대는 종을 달아 춘천에 불이 났을 때 종을 쳐서 불이 났음을 알리던 곳, 망대역할도 함께 하여 소방수가 수시로 올라가 화재발생 여부를 확인했다. 얼마 후에 소방서에서 사이렌을 들여와 화재가 나면 ‘애애앵~’하고 아홉 번 계속불면 비상사태였으며, 낮 12시엔 정오 사이렌, 밤 12시엔 통행금지 사이렌으로 시보(時報)역할도 했다. 지금도 민방위 훈련에 사용하고 있다. 망대골목은 일명 아리랑 골목으로도 불린다. 낡고 허름한 시멘트 돌담, 녹슨 쇠창살과 철조망,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 등 시간여행 속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아리랑 골목은 혼자 걸어도 옷자락이 담벼락에 스칠 정도로 비좁다. 이곳 산동네 마을은 1960~70년대 통금(1945. 9. 7~1982. 1. 5)이 있던 시절, 늦은 장사를 끝내고 산을 넘어 약사리나 효자동으로 갈 때 통행에 걸리자 산비탈에 한집 두집 둥지를 틀기 시작하며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망대골목도 재개발지역으로 조만간 소양로 기와집골목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죽림동성당
죽림동성당(등록문화재 제 54호)
망대와 마주보는 곳에 죽림동성당이 있다. 죽림동(竹林洞)은 원래 개못(중앙시장) 안쪽에 있어 ‘개못안’ 이라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가연리(佳淵里)로 고쳤다가 1946년 죽림동으로 바뀌었다. 죽림(竹林)은 봉의산 아랫동네가 되므로 봉(鳳)이 먹는 대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비롯됐다는 풍수학적 지명설과 이곳에 살던 우례 모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죽림동성당은 동내면 곰실공소에서 출발했다. ‘1910년 엄주언 (엄말딩)이 곰실 윗너부랭이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가 아랫너부랭이로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곰실은 고은리의 옛이름. 1928년 도토리 밭이었던 죽림동 언덕으로 이전, 1949년 현 성당으로 착공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파괴, 1953년 다시 지어졌다. 전형적인 뾰족탑 성당으로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된 장미창이 아름답고 뒤편에는 사제들의 묘역이 있다. 뜨락에는 1960년 심었다는 목백합이 그늘을 드리운다.
성 골롬반의원 기념비
성골롬반의원터
1955년 11월 당시 천주교 춘천교구장이었던 구인란 토마스(T. Quinlan) 주교는 6.25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고통 받던 시민을 위해 의사와 간호사 수녀의 춘천 파견을 요청했고, 작은 임시 진료소에서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이후 56년간 51명의 수녀들이 가정방문 진료, 무의촌 진료, 방문 호스피스 등 의료봉사를 펼쳤다. 성 골롬반의원은 2011년 10월 30일 폐쇄됐다. 춘천은 물론 인근 지역 사람들은 성당은 몰라도 수녀병원은 기억했다. 춘천시는 2021년 6월 성 ‘골롬반의원 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곳은 약사리 고개로 불렸는데, 조선시대 역원제도에 따른 약사원이 있었으며, 성 골롬반의원 근처에 유명한 약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약사원 옆을 지나는 고개를 ‘약손’고개라 했으며, 이 ‘약손고개’가 약사리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약사천(위)과 효자동 벽화 골목
효자동 벽화 골목
약사리 고개를 내려가면 약사천이 흐르고 징검다리를 건너면 몸짓극장이 나타난다. 효자1동 행정복지센터 골목으로 들어가면 효자 반희언의 이야기가 벽화로 펼쳐진다. 조선 중기 이곳에 살았던 반희언(1554~? )은 중병에 걸린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3구가 있는데, 그 중 가운데 시체의 목을 잘라다 고아서 어머니께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약을 드리려고 솥뚜껑을 열어보니 시체머리 대신 산삼이 있었다. 노모는 그 해 겨울,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산으로 가 우여곡절 끝에 딸기를 구했지만, 눈보라에 길을 잃고 헤매다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반희언을 해치는 대신 집까지 태워다 주고 사라졌다. 시체의 목을 잘라 온 곳은 지금의 거두리라고 한다. 조선 선조는 그의 효행에 감복해 1608년 효자정려를 내렸다. 이후 마을 입구에 효자문을 세웠으며, 효자동이 되었다. 지금도 들머리에 홍살문이 있고 고갯마루에 반희언의 조각상이 있다. 효자 벽화로 채워진 좁다란 골목길을 오르면 효자상과 정자가 있다. 이어지는 위편의 상상코스는 고양이 골목이다. 길고양이로 몸살을 앓던 마을 민원의 해법으로 찾은 게 고양이와의 상생이었단다. ‘구름빵 주인공 벽화 그리기’사업을 시작으로 멋쟁이 고양이를 비롯 앙증맞은 고양이들이 모퉁이 구석에서 튀어나온다. 고양이 조형물과 벽화 90여 점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효자 이야기와 길고양이 이야기로 채워진 골목길(1.23㎞)은 낭만골목으로 불리며 뭉클코스-레트로코스-상상코스로 이어진다. 지금도 골목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길냥이들을 만날 수 있다.
효자 조각상과 조각문
효자동 성모수녀회 수녀원
효자동 성모수녀회 수녀원(등록문화재 제 743호)
효자동 골목을 내려와 길을 건너면 새말고개가 기다린다. 고갯 길을 넘으면 효자동성당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죽림동성당, 소양로성당에 이어 2019년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춘천수련소’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일명 수녀원으로 불리던 이곳은 강원도지역선교를 담당할 수녀 양성을 위한 시설로, 1959년 성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들이 지었다. 1969년까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수련소로 사용되다가 1977년부터 가톨릭교육원으로 이름을 바뀌어 신앙교육의 산실이 되었다. 춘천교구 주교관이자 수녀원, 교육원으로 강원 지역 선교활동의 중심지였다. 1962년 증축되는 과정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2동의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 특징이다.
*<봄산이>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신용자 2009년부터 ‘우리 땅 걷기’ 및 지역의 옛길 탐사에 빠져 ‘길미녀’가 되었다. 우리네 역사와 문화, 생활의 숨결이 밴 옛길을 걷기 코스로 만들며 ‘춘천문학여행’, ‘봄내유람’을 거쳐 현재 우리 땅 답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춘추마실과 이야기’, ‘적멸보궁 순례길을 걷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