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인구가 최근 5년간 5,000명 넘게 증가하며 목표로 한 30만 인구를 앞두고 있다. 춘천으로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2023년 봄내에서는 춘천으로 이사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축구 교육을 위해 가족 모두가 이사 오는 도시. 춘천은 제2의 손흥민을 꿈꾸는 축구 꿈나무들의 메카다. 이번 호에서는 축구가 좋아서 경상남도 김해에서 춘천으로 온 하람이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빠 나도 축구하고 싶어”
아빠가 다니는 조기축구회에 따라간 일곱 살 하람이가 처음 했던 말이다. 아이들이 공놀이에 흥미를 보이는 건 놀랄 일은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하람이는 예상과는 달리 여자아이다. 장난감 가게에서 공부터 집어 들었던 하람이는 오직 축구를 배우기 위해 지난 7월 춘천으로 이사 왔다.
하람이 아빠 박기수(40) 씨는 김해 사투리로 “일부러 인형을 사다 줬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자동차와 로봇을 더 좋아했어요”라고 말했다. 하람이는 다섯 살 때부터 놀이터 구름사다리를 왕복했고 자전거도 금세 배웠다. 아빠가 ‘축구 하고 싶다’고 말하는 딸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던 것은 하람이의 남다른 승리욕과 뛰어난 운동신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해 유소년축구클럽에서 운동하던 하람이는 작년 7월 손 아카데미 입단 테스트에 지원했다. 박 씨는 “손흥민 선수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테스트 공고를 발견했어요. 춘천에 이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운이 좋았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테스트에 통과하길 바라다가도 탈락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40년 가까이 살았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다. 막상 테스트 통과 문자를 받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이삿짐을 꾸렸다. 먼저 하람이를 할머니와 함께 춘천으로 보냈고 소방관인 박 씨는 발령을 신청, 지난해 11월 드디어 춘천 시민이 되었다.
삼한사온의 영향일까. 겨울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온화한 날씨였던 지난 1월 10일(화) 오후 동면 장학리에 위치한 손 아카데미를 찾았다. 평소 일반인 출입 금지구역인 운동장에 들어서니 유소년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0여 명의 선수 가운데 130cm가 조금 넘는 키, 왜소한 체격이지만 다부진 리프팅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손 아카데미의 막내이자 홍일점 박하람(11)이다.
축구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넓은 공간을 누비는 데다, 다소 거친 면이 있는 스포츠라는 면에서 남자들의 운동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하람이가 남자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자연스레 축구를 배우는 모습에서 후련함 마저 느껴졌다. 동갑내기 친구 로이와 도겸이가 목이 터져라 하람이의 리프팅 숫자를 세어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코치진은 “하람이가 저보다 더 잘해요”라고 말하는 도겸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람이에게 좋아하는 선수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손흥민은 골 결정력이 좋고 달리기가 빨라요. 조규성은 움직임과 침투능력이 좋고 이강인은 패스와 크로스를 잘해요”라고 줄줄이 말했다. 하람이의 포지션은 사이드 윙이다. 용어 그대로 날개처럼 좌우로 퍼져나가면서 공격하는 위치다. 하람이는 지난해 12월 24일에 열린 베트남 달랏시 유소년 친선경기에 참가해 ‘정확한 스루패스’로 호평 받았다.
하람이 아빠는 “아이들은 손흥민 선수가 어떻게 운동하고 공부했는지 다 아니까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라며 “하람이가 이곳에서도 항상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어요”
박기수 씨는 강원도에 연고가 없다. 여행조차 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춘천살이에 푹 빠진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사람들이 여유롭더라. 운전할 때 가장 많이 느낀다. 차선도 잘 지키고 늘 친절하다”라고 했다. 이어서 “도시인데도 산과 호수가 가까이 있고 그림 같은 풍경이 삶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고 덧붙였다. 대학병원이 두 개나 있고, 나들이 갈 곳이 많아서 놀랐다고도 했다. 벌써 레고랜드, 남이섬, 김유정역, 수목원, 삼악산, 애니메이션박물관까지 다녀왔다. 그에게 춘천살이의 아쉬운 점은 없냐고 묻자 “타지역에 비해 대중교통이 덜 발달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춘천은 겨울이 상당히 춥더라면서 “차에 시동이 안 걸릴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해 봤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손 아카데미는 축구 교육에 관심있는 학부모라면 누구나 아는 전국구 유소년 축구클럽이다. 이곳은 지역민과 외지인 비율이 1:9 정도다. 타지에서 온 선수 반 학생들은 부모님이 함께 이사와야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손흥민 신드롬이 이어지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꾸는 어린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교육을 위해 춘천 전입을 고려하는 이들을 위해 춘천시도 정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시 관계자는 “춘천이 교육 때문에 떠나는 곳이 아닌 교육 때문에 이사 오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강원특별자치도 법이 6월에 개정되면 예체능 관련 학교 등을 육성하는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