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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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4

2023-01
#봄내를 만나다
춘천은 지금
누군가 버리고 시민들이 주웠다
시민플로깅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없는 것처럼 여겨 버리는 쓰레기 문제. 우리가 매일 버리는 쓰레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론가 간다. 누군가에게로 간다. 어떤 이는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몰래 갖다 버리고 도망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줍는다. 




글 한수지  사진 이윤섭 시민기자



아침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진 지난 12월 10일 오전, 공지천 산책로 에 집게와 봉투를 든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도한 ‘쓰담춘천 플로깅(Plogging)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프로카업(plocka upp)’과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참가자들은 8세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누군가 “쓰레기를 주우러!” 하고 선창하자 나머지는 한목소리로 “가자~!”라고 응답했다. 



“여기가 스티로폼의 왕국이야?”



공지천 산책로는 언뜻 깨끗해 보였지만 이는 쓰레기가 ‘대놓고’ 버려지지 않아서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는 쾌적했지만 지대가 낮은 둑길로 눈을 돌리자 풀숲에 몸을 감춘 쓰레기들이 부끄러운 듯 실체를 드러냈다. 두세 걸음당 한 개꼴로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비닐봉지, 과자봉지, 마스크, 담배꽁초, 사탕 껍질까지 각양각색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미세플라스틱의 주범인 스티로폼이었다. 쉽게 깨지고 모래 알갱이처럼 잘게 부서지는 성질 때문이다. 5mm 이하 크기로 미세화된 스티로폼을 물고기가 먹고, 결국 우리 몸속에 쌓인다. 청소도 어렵다. 풍화 작용으로 쌀알 같은 가루가 된 스티로폼을 줍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일제히 고개를 숙인 참가자들의 모습이 흡사 플래시몹 행사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와, 스티로폼 천국이다.” 플로깅의 가장 어린 참가자인 8세 종우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어른들은 잠시 허리를 펴고 웃었다. 종우는 매서운 강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지천 곳곳을 누비며 어른들보다 더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12월 10일(토) 오전 10시 공지천 쓰담춘천 현장



버리는 사람 줍는 사람 따로 있나 



플로깅을 시작한 지 20분. 75ℓ 쓰레기봉투가 라면 봉지, 녹슨 캔, 새우 깡 비닐 등 각종 쓰레기로 금세 채워졌다. 

어떤 마음으로 플로깅에 참여했냐는 질문에 손성미 씨(44세, 근화동)는 “공지천에 죽은 물고기가 떠다니고 플라스틱과 비닐로 배 속을 채워 죽음을 맞는 순간을 보고 아이와 함께 ‘쓰담춘천’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근영(49세)·전인숙씨(42세) 부부는 “큰아들이 중1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벌써 고3이 됐다. 쓰레기를 같이 주우면서 평소 대화 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사춘기 자녀와 속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며 가족 봉사활동으로 플로깅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쓰레기를 줍는 시민도 있다. 이원도씨(56세)는 일주일에 세 번씩 카누를 타고 의암호 구석구석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벌써 3년째다. 그는 호수 위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 위해 직접 카누를 만들었다. 카누는 수심이 20cm만 되어도 뜬다. 접안이 쉬워서 호수 위를 청소하기에 제격이다. 

그는 “나 혼자 쓰레기를 치운다고 표시가 날까 했는데 3년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깨끗해지는 것이 느껴진다”라며 “줍는 속도가 버리는 속도를 이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낚시꾼이 만든 쓰레기 무덤 



1km 정도 이어진 공지천 수변 길을 청소하는 데에 2시간 정도가 걸렸다. 봉투 하나는 쓰레기를 밀어 넣다 옆구리가 터졌다. 천변길 끄트머리에서는 낚시꾼이 버리고 간 쓰레기 무덤을 발견했다. 소주병, 부탄가스 통, 전구, 맥주 캔과 은박돗자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너무 무거워 성인 남자 둘이서 겨우 옮길 정도였다. 송현섭 활동가는 “플로깅 중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 무덤을 만나면 힘이 빠진다”면서 “행정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시민의식 또한 적극적으로 동참해 이제는 쓰레기를 정말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불법 쓰레기 단속에 나선 춘천시 



공지천은 상습 불법 쓰레기 투기 지역 중 하나다. ‘쓰담춘천’ 외에 ‘춘천 시가족봉사단’, 춘천러닝크루의 ‘같이줍드래요’ 등 다양한 플로깅 행사가 매주 의암호 주변에서 열리는 이유다. 하지만 양이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누군가는 계속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이다. 춘천시도 발 벗고 나섰다. 시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움직이고 있다. 

박순무 춘천시 자원순환과장은 “시민들과 함께 불법 투기 제로 도시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상습적으로 쓰레기를 배출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단속해 시민들의 지속 가능한 삶을 지켜내겠다”라고 강조했다. 

김상진 춘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주민들의 생각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플로깅 같은 지역 현장의 경험이 쌓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언젠가 쓰레기 쌓인 강변이 정원이 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플로깅 참여방법 

쓰담춘천 @ssdam_chuncheon 

춘천러닝크루 '줍드래요' @official_crc.fo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