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오는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무한한 시간 위에 사람들이 만든 이정표다.
새 해를 맞아 처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다짐으로 출발을 한다. 그 마음을 나누기엔 호숫길이 자크르하다. 의암호를 품은 풍광들도 아름답지만, 호수 바탕에 찬란하게 쏟아지는 윤슬(물비늘)은 마법처럼 색다른 의암호 풍경화를 연출한다.
의암호 물가를 따라 걷는 물깨길(물가-물께)에는 스카이워크와 수상산책로가 기다린다. 스카이워크는 2007년 미국 그랜드캐니언에 설치한 강화유리 걷기 구조물을 시작으로 전 세계 대표적 절경에 설치되고 있다. 의암호 스카이워크는 의암댐 쪽으로 이어지는 수상산책로 끝머리에 2014년 봄에 세워졌다. 3월부터 11월까지 개방되며, 겨울철은 통제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할 수 있으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공지천까지 가는 물깨길에는 4곳의 물위길 데크가 있으며, 3군데가 통제 대상에 들어간다.
산비탈 물 위에 만들어진 데크 길, 수상 산책로는 까투리봉을 지나 송암스포츠타운으로 이어진다. 의암호에서 카누를 즐길 수 있는 물레길 배터가 있는 곳이다.
카누나루터를 지나면 2021년 10월에 개장한 ‘삼악산호수케이블카’ 건물이 나타난다. 의암호와 삼악산을 연결하는 국내 최장 3.6㎞의 로프웨이다. 호수와 산 언덕을 넘어가는 케이블카는 15분 정도면 삼악산 중마루에 탑승객을 내려놓는다. 이곳에서 둘러보는 탁 트인 풍광들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어지는 춘천송암스포츠타운은 2008년 철거된 춘천종합운동장을 대신해 새로 지어진 종합레포츠타운이다. 주경기장을 비롯, 야구장, 족구장, 빙상경기장, 클라이밍장, X-게임파크, 수상레저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2010년 ‘춘천월드레저대회’가 치러졌다.
송암리는 소나무가 많았던 곳으로 솔개, 소리개, 솔고개(송현)로 불렸던 곳, 예전에는 춘천을 떠나려면 이곳의 신연강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덕두원 새수골-다릿골을 지나 석파령을 넘어 안보역이 있던 당림리로 나갔다. 춘천의 관문이던 신연강과 석파령은 예전의 춘천 기행에 빠짐없이 등장하던 곳이다.
1967년 의암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인제, 양구를 거쳐 흐르는 동쪽의 소양강과 낭천(화천) 모진강, 자양강으로 흐르는 서쪽의 강줄기가 어우러져 신연강이 되던 곳으로 1930년 개통된 아치형 철교 신연교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상판만 바뀌었을 뿐 교각은 그대로다.
춘천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오르던 '봉황대'
예전 석파령을 넘어 신연강을 건너던 나루터는 의암호 물이 차면서 섬이 된 붕어섬의 위쪽이다. 신연강을 건너 춘천으로 들어가려면 서낭당이 있는 돌고개를 지나 읍내로 갔다. 지금은 서낭목만 길 가운데 남아 있다. 이 돌고개 왼편에 봉황대로 오르는 길이 있었고 강가에서 오르던 길도 있었으나 두산연수원 신축공사를 하며 길이 막혔다. 봉황대 바로 아래가 중도선착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의 봉황대는 해발 126m의 나직막한 봉우리다. 중도의 고산대와 더불어 춘천의 전망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봉황대에 오르면 봉의산을 마주 보며 춘천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예전에는 춘천을 떠나는 선비들이 신연강을 건너기 전 이곳에 올라 간단한 송별연을 열며 춘천과 작별하던 곳이라고 한다.
상상마당 그리고 의암공원
중도선착장에서 이어지는 상상마당은 1980년 어린이회관으로 개관되었던 곳이다. 잠자리 날개 모양의 건축물은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고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한 건물로 유명하다. 의암호가 발아래 놓여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폐관의 위기에 몰리자 2014년 ‘KT&G 상상마당’이 리모델링을 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아트센터로 변신했다.
이어지는 산책로는 기존의 숲길로 직접 춘천MBC로 오르는 길과 아랫길이 있다. 공지천과 의암호가 만나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곳도 춘천전망대 역할을 하던 부벽정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어느 주민은 지형이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 ‘잠두봉’으로 불렸다고 기억했다. 춘천MBC 맞은편 언덕에는 춘천지구전적기념관(구 안보회관)이 있어 또 다른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처음 춘천대첩 관련 기념 조각상 등이 세워진 곳이다.
수상산책로에는 춘천 시인들의 정겹고 말랑말랑한 시비와 의암호 ‘문인의 길’ 글귀들이 위로를 건넨다.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의암공원으로 데려다 준다. 공지천과 소양강, 자양강(낭천내) 세 물길이 합쳐지던 삼천동(三川洞)에 자리한 이곳은 1960년대만 해도 전국적인 빙상경기장으로 알려졌던 곳, 지금은 둑길로 좁아지고 공원과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었지만 많은 이에겐 그리움의 공간으로 남아있으며 이외수의 ‘황금비늘’ 테마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삼천동 의암공원에는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의암 유인석,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의 동상과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의암 유인석(毅菴柳麟錫,1842~1915)은 춘천 남면 출신, 위정척사론으로 의병운동을 전개한 유학자이자 의병장이다. 1910년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도총재로 활동했다. 의암호는 옷바위를 뜻하지만, 의암공원은 그의 호를 붙였다. 공지천은 곰짓내로 불리던 곳이며, 소양강(인제, 양구)이나 모진강(화천)으로 오르내리던 소금배나 뗏목이 닿던 곰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의암호 스카이워크
수상 산책로
춘천대교 전경
에티오피아 첨전기념관
삼천동 의암공원에서 공지천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춘천조각공원이 있고, 맞은편에 3개의 원뿔형 검은 지붕으로 만들어진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관’이 있다. 바로 길 건너에는 1968년 5월 19일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이디오피아 황제께서 이 기념비를 친히 제막하였다’는 표지판이 있는 ’참전기념탑‘이 있다.
춘천시는 공지천 기념탑 건립을 계기로 에티오피아와 민간교류를 시작했으며, 2004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 간에 자매결연을 했고, 이후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2007년 3월 기념관을 건립했다. 셀라시에 황제(1892~1975)가 다녀가고 춘천 공지천 호숫가에 ‘이디오피아 커피’집이 생겼다. 에티오피아에서 직접 보내준 원두커피를 사용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지금도 기념관 2층 창가에서 마시는 자판기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공지천 산책로는 의암호의 윤슬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저녁답이나 달밤이면 금빛 윤슬을 만날 수 있다. 이 둑길 산책로는 물가 쪽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와 함께 쓰는 위편 산책로 두 길이 나란히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아침 돋을볕을 보는 산책로는 건너편 서면 쪽이, 저녁노을 스미는 윤슬길은 근화동쪽 산책로가 제격이다.
둑길을 돌아가면 다리 중간에 원형탑을 두른 춘천대교(2018년 7월18일 개통)가 보이고 의암호의 풀섬들도 나타난다. 춘천대교를 건너면 레고랜드가 있는 중도다. 이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이 있다.
에티오피아 국전참전기념관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
춘천대첩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모진교를 건너 내려오던 북한군을 옥산포와 소양강 일대, 우두산, 봉의산 자락, 근화동 등에서 3일간 방어한 전투를 이른다. 당시 38선이던 모진교는 춘천에서 12㎞, 북한군의 남침을 확인한 국군 6사단과 7연대 등은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북한군의 주력부대인 2군단은 계획 일정대로 남하하지 못했다. 이로써 남한군은 유엔군의 참전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화공원은 춘천전투 승리를 기념하고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현충공원으로 6·25 참전 학도병을 기념하는 ‘학도병기념탑’, 월남전참전 용사들을 기념하는 ‘월남전참전기념탑’이 있으며, 6·25 전쟁 및 월남전 참전 무공수훈자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무공탑’이 시민들의 성금으로 2003년 10월2일 세워졌다.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
소양강가 갯대배기 '당간지주'
춘천대첩평화공원에서 길을 건너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근화동 당간지주가 나온다.
당간지주(幢竿支柱)란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것으로, 그 주변 지역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은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 있다. 지주 사이 바닥에는 붉은 녹물이 밴 당간받침돌이 있는데, 이곳에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고려 시대로 추정한다.
마을에서는 갯대라 불렀으며 이 주변을 갯대배기라고 했다. 주변에 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소양로 칠층석탑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두 곳의 거리는 600m, 언젠가 발굴이 이뤄져 사실로 확인되면 고려 시대 소양강가의 대규모 사찰 터가 될 것이다. 1963년 보물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당간지주는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간지주
공지천 전경
신용자 2009년부터 ‘우리 땅 걷기’ 및 지역의 옛길 탐사에 빠져 ‘길미녀’가 되었다. 우리네 역사와 문화, 생활의 숨결이 밴 옛길을 걷기 코스로 만들며 ‘춘천문학여행’, ‘봄내유람’을 거쳐 현재 우리 땅 답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춘추마실과 이야기’, ‘적멸보궁 순례길을 걷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