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83

2022-12
#봄내를 품다
허준구의 춘천백경 ㉔
천근암과 의암 류인석
우주와 자연의 운행 원리와 법칙의 상징을 세우다



고대 동양에서는 우주와 자연을 구성하는 삼대 기본 요소로 天(하늘) 地(땅) 人(사람)을 꼽았다. 우주와 자연의 구성 요소인 하늘과 땅에 사람을 추가함으로 사람이 천지天地와 동등한 지위를 얻었고, 이를 통해 우주와 자연의 운행 법칙을 몸에 갖추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즉, 우주와 자연이 운행하는 원리와 그 에너지가 인간에게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아가 우주와 자연이 하나이듯이 인간도 우주와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천근암은 땅에 실재하는 하늘의 모습  

하늘이 땅에다 하늘 모습을 남긴다면 어떠한 모습이겠는가? 춘천 남면 발산리에는 하늘이 자기의 모습을 땅에 남긴 실제를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은 땅에 하늘을 심어 놓았는데 그것이 천근암天根巖이다. 남면 발산리 마을 주민들은 소남이섬 천근암을 모양에 주목하여 ‘배바위’로 부르고 있다. 

천근암은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영원한 매개체이자 하늘에서 땅으로 찾아오는 이정표와 같은 존재이다. 천근암天根巖에는 하늘이 우주를 운행하는 법칙과 실재가 영원하여 바뀔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늘이 땅에 내려준 이정표인 천근天根은 지주砥柱란 말로 환원할 수 있다. 지주는 황하지주黃河砥柱에서 나온 말로 어떠한 시련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물이자 그러한 존재를 뜻한다. 즉, 영원하여 어떠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법칙과 실재란 뜻이니, 천근암은 하늘 뿌리이면서 동시에 땅에 존재하는 확고한 지주인 셈이다.   


우주의 운행 원리가 실현되는 시공간 천근암(배바위) 비도암 오지소 

천근암은 언뜻 보아도 큰 배 모양이라 이에 마을 사람들은 ‘배바위’로 부른다. 그곳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면 좌방산과 장락산 줄기가 협곡을 이루며 홍천강을 품고 있으며, 좌방산 줄기가 흘러와 우뚝 솟은 암벽 비도암賁道巖(8곡)과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일시에 멈춰선 오지소吾止沼(9곡)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천근암 위에서 자라는 소나 무들을 마주하면 우주 생명에 대한 신비감마저 떠오른다. 천근암 곁 비도암의 ‘비도賁道’란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력을 만들어내는 도道이고, 오지소의 ‘오지吾止’란 나를 선善한 영향력에 머무르게 하는 우주의 힘이다. 배바위는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름다움을 이루고 나를 선善에 머무르게 해주는 우주의 운행 원리가 실현되는 시공간이다.  



홍무벽  


비도암  



천근암은 ‘이산구곡’의 근원이자 총합적 상징물

의암 류인석柳麟錫(1842~1915)은 대한13도의군도총재大韓十三道義軍都總裁였으며,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와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백범 김구의 스승이기도 하다. 의암은 러시아로 떠나기 직전인 1907년 당숙 항와 류중악과 함께 ‘이산구곡’을 몸소 유람하며 아홉 곳을 지정하고 각각에 이름을 붙였다. 

‘이산구곡尼山九曲’은 가평 설악면 우읍산 선인봉 아래 입석立石을 일곡一曲으로 하여 춘천 남면 좌방산 서남쪽 홍천강 오지소吾止沼를 구곡九曲으로 한다. 아홉 곳의 이름은 일곡一曲 입석立石(선바위) 이곡二曲 소룡암巢龍巖 삼곡三曲 전위탄戰危灘 사곡四曲 요취담繞翠潭 오곡五曲 부연釜淵 육곡六曲 홍무벽洪武壁 칠곡七曲 비령담飛靈潭 팔곡八曲 비도암賁道巖 구곡九曲 오지소吾止沼다. 

이산구곡의 지정과 이름은 의암과 항와 선생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지만, 천근암이라 명명한 이는 성재 류중교柳重敎다. 류중교 선생은 구곡의 이름을 명명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구곡을 유람하고 천근암의 이름을 명명하여 ‘이산구곡’의 중심점을 세웠다. 생의 마지막에 스러져 가는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우주의 운행 원리가 이 땅에 복원하여 강물 속 지주처럼 버티어서 나라가 보존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천근암이라 명명하였다.


배 모양 형상에 주목하여 ‘배바위’로 불리기도 하는 천근암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만년 바위로 우주가 소멸하지 않는 한 우주의 선한 운행 법칙과 그 선한 방향으로의 운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천근암은 하늘과 땅이 인간과 연결되는 통로이면서 우주 원리와 자연법칙이 작동하는 상징물인 셈이다.  


* <허준구의 춘천100경>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글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 소장. 일찍이 춘천학에 관심을 갖고 춘천의 역사와 문화에 집중해 왔다. 

특히 천혜의 춘천 자연환경에 문화와 역사의 색을 입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