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소년, ‘조명’에 눈 뜨다
군대시절 강원도 출신 병사들은 흔히 감자나 비탈로 불렸다. 강원도 친구들은 그 별명을 싫어했지만, 내게는 자연친화적으로 들려서 흥미로웠다. 나이가 더 들고 강원도민으로 살게 되면서 자연을 생활의 근거지로 삼았던 사람들이 겪은 녹녹지 않은 삶의 무게를 알게 됐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가령, 일곱 살 때까지 강냉이밥만 먹고, 봄에는 무당개구리 여름엔 뱀 가을엔 다람쥐 겨울엔 토끼를 잡아 용돈 벌이를 하던 강원도(홍천 서석) 소년의 삶을 ‘자연친화’로만 형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연극연출가, 축제연출가, 조명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 협동조합 예술감독으로 무대 위의 삶을 살아가는 용선중 씨(51)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야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는 그의 얘기를 들었을 때, 무대공연에 필수요소인 ‘조명’과 그의 만남이 미묘하게 다가왔다. 처음 연극을 경험한 강원고 연극반 시절부터 천직처럼 그를 따라다녔던 조명은 서울예대연극영화과 입시 때 톡톡히 한몫했다.
연극이 대중적 사랑을 받던 마지막 세대로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배곯기를 전제로 하던 시절에 연극판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생애 처음 30촉 전구가 환하게 밝혀질 때 소년의 뇌리에 각인된 황홀함이 아니었을까.
무대 안의 인생 35년
용선중 씨가 50세를 맞아 펴낸, 자신의 지난 삶과 앞으로 삶이 함께 담긴 책의 제목은 『연극이여 영원하라』였다. ‘연극’만큼 그의 삶을 잘 집약하는 단어도 없지만, 연극이 대중들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영원’은 일종의 반어로 읽힌다.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 뿌려지는 지금, 경쟁력이 사라진 연극에 유일하게 남은 매력이 현장성인데 상대적으로 현장성의 가치는 오히려 강력해졌어요.”
무대는 줄었지만 그만큼 강화된 현장성이 연극에 대한 그의 염원을 ‘영원’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연극반 ‘파란자전거’를 시작으로 고교 졸업 후 결성한 극단 ‘혼팔이’, 대학로로 옮겨 일한 계몽아트홀, ‘노찾사’ 4집 투어를 함께 했던 ‘라이팅 콘체르토’, 본격 연극패 ‘76극단’, 3년간 별난 경험을 안겨주었던 ‘금강산 문화회관’을 거쳐 “내 연극의 고향”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춘천으로 돌아온 건 2011년. 그동안 무대를 떠난 적이 없었지만 그가 줄곧 매만진 건 조명기기였을 뿐, 꼭 하고 싶었던 연출의 기회는 좀체 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춘천은 기다렸다는 듯 연출을 맡긴다. 체호프의 작품들, 원로연극인들과 함께 한 ‘옹고집전’과 ‘이 대감 망할 대감’,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현재로 소환한 ‘리퍼블릭·리어’, 현대 부조리극의 대가 이오네스코를 판소리로 바꾸어낸 ‘코뿔소’까지, 차곡차곡 쌓인 그의 연출 레퍼토리의 본거지는 춘천이었다.
축제의 도시 춘천, 새로워지길 바라며
연극 인생에 소중한 길라잡이가 된 안민수의 『연극연출』과 다름의 가치를 일깨워준 말로 모건의 『무탄트 메시지』, 막연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사랑하는 그. 타고난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아침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그런 자신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그.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땐 이상을 따랐고,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고 슬픈 일이 있을 땐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는 용선중 씨.
지난봄부터는 강원대학교 백령아트센터 무대감독을 맡아 오랜만에 직장인 모드로 돌아간 그에게 춘천이 남다른 것은 마임축제와 인형극제, 연극제 등 우리나라 공연 축제의 출발도시라는 점도 작용한다.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버겁긴 하지만 그가 ‘공연예술가’로 자칭하는 배경에는 춘천과 축제에 대한 진득한 애정이 녹아 있다. 꼭 하고 싶은 축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가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축제’라는 대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축제가 만들어졌고, 이젠 매일 축제를 즐길 수 있을 만큼 흔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축제들 간에 경쟁이 일어나고 축제의 본질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는 듯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교유하다가 뭘 하고 싶으면 하는 것 - 공연을 해도 좋고, 그냥 쉬는 것도 좋고요. 보통의 축제는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데 둘의 경계가 사라지고 둘이 함께 즐기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축제입니다. 자신의 공연이 끝나면 다른 팀의 공연을 관람하거나 도우미를 하고, 공연들이 모두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공연 얘기를 나누고 그런 게 쌓여 다음 공연의 콘셉트가 되던 춘천마임축제의 초창기처럼요.”
얼핏 초월적 화두처럼 들리는 그의 바람이 문화와 축제의 도시 춘천의 내실로 이어지는 데 큰 몫을 해줄, 지천명 이후 그의 ‘무대’를 기대한다.
하창수
소설가이며 번역가. 춘천으로 이사 온 지 30년, ‘경상도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괜히 섭섭해지는 춘천 사람이다. ‘사람 이야기’는 춘천에 살면서
그가 알게 된 사람, 그 누군가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