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리, 인형의 거리
그러면 이제 갑시다
지금 저녁은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 T.S 엘리엇 ‘J·A·프루프록의 연가’ 첫 부분
빌딩 사이로 난 골목 하늘을 쳐다보라. 유령 같은 구름이 하늘에 떠, 어두운 골목을 기웃이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마취된 구름일까.
도심 변두리의 저녁은 한순간의 정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자동차 전조등조차 숨을 죽인다. 마치 태풍의 전야 같다.
이내 석양은 곧 자신의 붉은빛을 목숨처럼 거둘 것이다.
나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간다. 모퉁이 건물 문 앞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쪽 유리문 안쪽에 한 인형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다. 황효창! 그는 인형만 40년 넘게 그려 온 우리나라 원로작가다.
(왼쪽부터) 거두리 골목, 황효창 <만취>, 개나리미술관의 황효창 초대전에서
외지고 한적한 개나리 미술관. 황효창은 인형 그림 20여 점을 하얀 벽면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밖을 내다본다.
누가 그림을 보러 올까.
그런데, 놀랍다.
거의 절반가량 빨간 딱지가 붙어 있다. 핏방울 같은 동그란 딱지. 그것은 그림보다 더 확대된다.
“그림이 꽤 나갔어.”
“그래?”
“응, 그림값이 높은데도. 벌써 아홉 점이나 나갔어.”
황효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앞으로 더 나가지 않을까요?” 정현경 관장이 희망을 품는다.
“오늘은 두둑해. 한 잔 마시자우.”
황효창 인형작가는 의기양양하다. 늘 함께 다니는 그의 부인이 조용히 웃는다. 연필그림으로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희용 작가도 곁에서 소리 없이 웃는다.
그림은 팔려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비어있는 검은 동공, 마스크 한, 그것도 가위표가 뚜렷이 새겨져 있는, 침묵을 강요당한 침묵의 인형.
대체 황효창은 무슨 이유로 이토록 슬픈 자화상을 그리는 것일까.
암울한 시대의 고독한 시인 황효창.
팔리지 않을 그림만 그리는 지구인 아닌 외계인. 곤드레만드레 취해 쓰러진 인형. 그 인형의 눈물이 이슬처럼 맺힌다.
‘만취’된 인형이 팔렸다. 놀라운 일이다.
사실 술을 자제해야 하는 황효창 작가는 그림으로나마 ‘만취’되고 싶었을지 모른다.
골목길은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은밀히 번성했던 기억들을 토해낸다.
그런 슬픈 인형의 이야기는 이제 마감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비정하고 비열한 시대는 늘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이형재 그림 <소양1교 상담전화>
소양1교
황효창 화가와의 한 잔 술은 마음의 위안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린 슬픔조차 곰삭힌 술 마시는 인형들이다. 한 잔의 술을 앞에 놓고 야금야금 마신다. 그만큼 이제 우리는 술을 이기지 못한다.
소양1교와 소양1교 인도
소양2교
나는 황효창 화가와 헤어져 호수로 간다. 1933년에 놓인 소양1교. 북쪽 우두동과 남쪽 번개시장을 잇는 소양1교는 6·25 때 큰 전투가 벌어졌었다. 북이나 남이나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 콘크리트 교각엔 깊게 파인 총탄 자국들이 아직도 자욱이 남아 있다.
아래쪽 소양2교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색색의 무늬가 수시로 변화한다. 빛기둥이 호수에 가멸히 잠겨 있다.
이제 소양2교는 자동차들의 넘치는 물결로 불야성이다.
그에 반해 소양1교는 한적하고 고즈넉하다. 일방통행로가 된 소양1교는 예전엔 그늘지고 어두웠었다. 지금은 사람이 편안하게 건너다닐 수 있는 인도가 만들어졌다.
다리 난간엔
‘되돌릴 수는 없어도 다시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마음의 문을 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삶이 무겁고 버거워서 삶을 버릴까 생각하는 사람은 이 다리를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꽃잎처럼 자신을 허공에 던진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 다리를 ‘자살교’라고 불렀다.
자신을 버리는 비통과 절망의 다리이다. 그건 자살자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나는 초록전화기를 본다.
119
마지막 골목에 들어선 자신의 선택을, 어쩌면 따뜻이 다독여줄지도 모를 번호. 어떤 이는 슬픔으로 읽고, 어떤 이는 마음의 아늑함으로 그 숫자를 가슴에 새길 것이다.
돌고래 자리
돌고래 찾기 “희망”
문득!
밤하늘을 쳐다본다. 가을이다.
페가수스의 창이 떴다. 오른쪽으로 백조자리와 독수리자리도 보인다.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견우성은 칠월칠석날 여름밤에 직녀성과 만났다. 그날, 견우성은 유난히도 반짝였었다. 가을이 되자 그 별은 다시금 외로운 별이 되었지만, 견우는 늘 희망을 잃지 않는 1등성 별이다. 헤어짐은 절망이 아니다. 희망이다. 일 년이면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가 견우에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유심히 근처를 살펴보니 희미한 그림자 하나, 숨어 있다.
돌고래다.
우린 얼마 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았다.
곤란한 처지나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우영우의 마음속에 고래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것이 하늘이건 바다건, 그 어디건 간에.
그리고 마침내 우영우는 해내고야 만다.
저 캄캄하고 깊은 하늘에 꿈을 가지고 헤엄치는 돌고래가 있다.
한 번만이라도 하늘의 돌고래를 보았다면 그 사람도 우영우처럼 희망을 품게 되지 않을까.
별에게 묻다
춘천의 밤은 별빛이다. 하늘의 별과 더불어 호수의 별, 먼 서면에 깜빡이는 별, 골목 어두운 길을 비추는 별,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두런거림의 별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가슴속에 빛나는 별이 있다.
어느 날 나는 35세가량의 젊은 부부를 만났다. 4년 전, 그들은 타지에서 춘천으로 왔다. 춘천은 별처럼 아늑하고 반짝여요.
그만 춘천에 매료되고 만 그들은 춘천에서 직장을 얻고 정착했다. 시간이 나면 이들은 춘천 여기저기를 걷는다고 한다.
춘천은 늘 새로워요, 라고 그들은 말했다.
어느 아름다운 별에 도착한 느낌이에요. 하루하루가….
이들이 바로 희망의 돌고래가 아닐까.
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싶다.
네 스스로, 너를 위로하라.
최돈선 시인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