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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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1

2022.10
#봄내를 즐기다
봄내 산책로 이음길 1
배움길
대학교·박물관·도서관 품은 ‘배움길'

신성한 생명력을 품은 춘천은 ‘가을도 봄’이라는 축복의 땅이다. 예부터 살기 좋은 고을로 꼽혔던 춘천은 근래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곳에 또 하나 걷고 싶은 길이 열렸다. 춘천을 아우르는 둘레길이다.

어느 날 문득 ‘춘천의 산책로를 잇는다면 좋은 길이 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고 드디어 춘천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멋진 길을 만났다. 바로 봄산이(봄내 산책로 이음길)다. 1코스 배움길부터 봄솔길, 옷바위길, 윤슬길, 문소길, 도심길(근대문화유산 답사)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산책로는 도심 곳곳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만들어진 길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서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소나무숲 오솔길이나 물깨길(물가길)이 있으니,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 춘천에는 애막골 산책로를 비롯 공지천, 안마산, 드름산, 봉의산, 강원대 산책로 등이 있다. 이들 산책로는 접근성이나 편리성이 좋아 손꼽히는 도심 산책로다. 산책로야말로 무시로 다닐 수 있는 걷기 자크르한(‘딱 알맞게 좋다’의 순우리말) 길이다.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지도 않다.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다. 걷기야 말로 살아있음의 확인이다. 애막골 산책로는 후평동 일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산책로가 뻗어 있다. 동부노인복지회관에서 출발해 솔숲으로 가르마처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어, 첫 번째 구름다리를 지나 두 번째 구름다리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새벽 시장이 이어진다. 애막골은 벌말(석사동)에서 안쪽으로 쑥 들어간 안막골이 애막골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과수원이 많았던 곳으로 원두막, 초막 등이 있었다. 다른 이야기로는 아이들의 무덤인 애총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새벽마다 사람 발길 줄 잇는 애막골 새벽시장

석사동 대우아파트 맞은편 언덕에 새벽장이 열리는 장터가 있다. 번개시장이라고도 불렸으나 지금은 새벽시장, 언덕시장으로 불린다. 아파트 단지가 둘러 있는 6차선 대로 옆 인도에 장이 선다. 이곳은 산책로와 연결되는 곳으로 처음에 김밥과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하면서 장터가 만 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포장마차 상점에서 즉시 말아 주는 뽕잎김밥집은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다양한 먹거리와 신선한 푸성귀, 과일가게와 옷가게 등 언덕길에 빈틈이 없다. 평일에도 새벽장이 서지만, 주말이면 새벽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저잣거리가 된다. 처음에는 언덕 입구부터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언덕 아래 쪽은 새로 오는 사람들이 좌판을 펴는 곳이라고 한다. 예전처럼 좌판을 벌여 놓은 장이 서고 오전 11시쯤이면 언제 장이 섰나 싶게 말끔히 사라진다.

(오전 6~10시, 연중무휴)


애막골 새벽시장(위)과 애막골 산책로 입구 어린이집에서 장식해 놓은 모습 



 700년 세월 담긴 고성이씨 묘역

이곳에서 사거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강원대학교 산책로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그 전에 아래쪽(대우아파트)으로 내려가면 ‘풍양조씨 묘역’이 있다. ‘고성이씨 묘역’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고성이씨와 아들인 조안평이다. 고성이씨는 고려 말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의 따님으로, 풍양조씨인 조신趙愼에게 출가하여 조안평趙安平과 조개평趙開平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남편인 조신의 둘째 형이 고려 말 전횡을 일삼던 신돈을 제거하는 거사를 도모하다 사전에 탄로 나 죽임을 당하고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남편은 차남인 개평을 데리고 충남 부여로, 부인인 고성이씨는 장남인 안평을 데리고 춘천으로 피신했다.

고성이씨의 아버지인 행촌 이암은 고려 공민왕 때 수문 하시중을 지낸 문신이자, 서예 명필로 춘천 청평사 ‘문수 사시장경비’ 글씨를 쓴 분이며, 고조선 역사인 『단군세기』를 남긴 분으로도 유명하다. 57세인 1353년 청평산에 입산, 5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고성이씨가 춘천을 피신처로 택한 것이다.

고성이씨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공로로 조선 초 강원도 여성으로는 처음 정려를 받은 분이며, 풍양조씨 가문이 춘천에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 조안평은 여말선초에 활동 한++인물이다. 묘역은 위쪽이 아들 조안평, 아래쪽이 어머니 고성이씨의 무덤이다. 700년 세월이 담긴 묘역 입구에 새로 세운 신도비가 있다.

3코스(옷바윗길)인 드름산 들머리 칠전동에는 같은 시기 신돈의 개혁정책에 참여했던 김정 묘역이 있다.




 시민에게 담장 허문 강원대학교 산책로

강원대학교는 1947년 춘천농업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70년 종합대학인 강원대학교로 변경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넓은 캠퍼스에는 수많은 건물을 품어주는 산림과 연못 등 자연환경이 뛰어나다. 열린 캠퍼스를 지향하며 2016년 산책로를 조성했다. 이 둘레길은 율곡관∼창강제지기술연구소∼환경연구소∼친환경농업 연구센터∼중앙도서관∼미래광장∼연적지∼함인섭광장 을 연결하는 2.2㎞로 약 1시간 코스.

강원대의 중심구역인 미래광장과 연적지는 휴식공간으로 사계절 아름다운 공간이다. 함인섭 광장은 강원대 초대 학장으로 6대 학장까지 지내며 강원대의 기틀을 다진 함인섭(1907~1986)을 기리는 광장이다.

2021년 가을부터는 의학전문대학원과 애막골을 잇는 담장을 허물어 시민들과 함께 누리는 휴양공원으로 조성했다. 강원대학교 동문으로 나가 도로로 직진하면 춘천국립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올해 개장한 어린이박물관과 주차장, 쉼터와 야외공원을 지나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형 실감영상·야외 정원 등 품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은 1995년 착공, 2002년 개관했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나뉘며, 1층에는 강원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선사실과 고대실이 있다. 2층은 강원의 중세 고려, 근세 조선, 대한민국과 기획전시실, 브랜드실이 있다.

밖에는 기억의 정원과 현묘의 정원 및 고인돌, 야외무대, 갤러리 카페 등이 있으며, 주차장 옆에 2021년 개관한 어린이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정면에 서면, 삼악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박물관 본관 대형 벽과 계단에서는 매 시간 초고화질 실감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 전시 중인 작품들을 소개해 웅장한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 야외 카페와 정원도 아름답게 꾸며져 산책하며 계절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오른편 기억의 정원 계단을 오르면 바로 춘천시립도서관이 나타난다. 1960년 춘천시 옥천동에서 도립도서관으로 개관, 1990년 삼천동으로 이전 개관했다. 2017년 시립도서관을 신축, 이전했으며, 1층에는 어린이도서관과 어린이장난감 도서관이 있고, 2층에는 일반 열람실이 있다.


 

강원대학교 미래의광장과 국립춘천박물관



 초등교사 산실·추억의 굴뚝 ‘눈길’ 춘천교대

이 도서관 옆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춘천교대로 이어지는 능선길 산책로다. 30여분 산 능선 숲 속 길을 걷다 보면 방향 감각을 의심하게 된다. 산길은 차도와 달리 지름길이라 언뜻언뜻 보이는 건물들이 낯설다. 군데군데 춘천교대 돌 표식이 나타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산책로 끝 머리에 거두리성당과 춘천교대 내리막길이 있다. 춘천교대 울타리 사이로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만나는 게 높다란 굴뚝이다.

춘천교육대학은 1939년 관립춘천사범학교(현 춘천교대)로 설립됐다. 현 봉의초교 자리에서 개교했으나 1941년 석사동 현 춘천교대 위치에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일제강점기 사범학교는 초등교사(당시에는 훈도라 불렀다)를 양성하던 중등 수준의 국립(당시에는 관립) 교육기관이며 각 도별로 설치 돼 초등교사를 양성하고 배출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학생들은 1년 이상 의무적으로 기숙사에 입소해야 했다.

어떤 건축물이든 역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1980년대 춘천교대에서는 학교 환경정비 차원에서 일제강점기 세워진 기숙사 식당 굴뚝을 철거하려다가 동문의 항의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춘천교대의 상징처럼 된 은행나무길은 가을이면 샛노란 카펫으로 변한다. 예전에는 하얀 백양나무 숲길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 동요의 산실이기도 하다. 춘천교대 동문들이 지은 ‘과수원 길’ ‘꽃밭에서’ ‘그리운 언덕’ 등의 노래비가 있다.

석사동은 퇴계동과 더불어 춘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석사천이 흐르는 동쪽 마을로 원래 모래와 자갈이 많아 벌말로 불렸으며, 한자로 석사石砂동으로 썼으나 춘천교대가 들어오면서 석사碩士동이 되었다.


춘천교대 뒷편 산책로


춘천교대 굴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