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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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0

2022.09
#봄내를 꿈꾸다
도란도란 춘천
요선동 신선 같은 화백
춘천의 모습 세밀화로 담는 현암 한진

현암 한진 화백 부부



김유정 세필화(왼쪽), 루이 암스트롱(오른쪽)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요선동의 금요일 저녁.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한 현암인물화기법연구소를 찾았다. 목조계단의 반질반질해진 코와 삐걱거리는 디딤판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화실을 가득 메운 세필 인물화. 의병장 류인석 선생,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을 비롯해 소설가 김유정, 이효석, 박인환, 화가 박수근까지.

세밀한 터치도 놀랍지만 켜켜이 쌓인 밑 색이 반사광처럼 올라와 바랜 느낌을 주는 오묘한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한쪽 벽을 가득 메운 200호는 됨직한 춘천의 옛 시가지 전도. 지금의 소양강이 멀리 실개천처럼 흐르는, 넓게 펼쳐진 100년 전 춘천의 모습을 세밀화로 담았다. 1918년(추정) 제작된 엽서를 확대하고 관찰해 몇 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하셨다고 한다. 비단 위에 새긴 역사를 천천히 살펴보는데 선생님은 커피 대신 막걸리를 내오셨다.

그림을 뜯어보는 내 모습이 반가웠는지 선생님은 손잡이가 사라진 루페(확대경)를 건네주신다. 그림 얘기는 꺼내기도 전에 나는 취해버렸다. 기법의 완성도는 물론 역사적으로 값어치 있는 그림이었다.

1980년대 동강 권오창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후 먹고 살 걱정에 잠시 붓을 놓았지만 타고난 열정을 식힐 수 없어 춘천 요선동의 이곳에 터를 잡으셨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전시가 2018년 초상화 대전. 그나마 그룹전의 성격을 띤 전시였다. 전시를 빨리 보고 싶다며 다음 개인전은 언제냐고 묻자, 현암은 벽에 걸린 처칠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하얗게 보이는 콧잔등에도 수백 땀의 붓과 고뇌가 거쳐 간다’는 말로 우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인물화 세필화 수강생을 너덧 명씩 받고 있다며, 현암 선생의 동반자이자 조력자인 사모님께서 명함 한 장을 넌지시 건넨다.



현암인물화기법연구소

 소양고개길 49-1 2층

257-7107, 010-7226-5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