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대표 환경운동가 송현섭 씨
일상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얼마 뒤 높은 인구밀집도에 교통량이 많아서 대기오염이 심각한 뉴델리와 베이징 같은 대도시의 비포·애프터 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그보다 훨씬 전 방독면을 쓰고 출근하는 그곳 시민의 모습을 봤을 때와 상황은 정반대였지만 충격만은 거기에 못지않았다.
평소의 흐릿한 모습을 지워내고 황홀한 백색의 자태를 드러낸 타지마할은 ‘세계의 공기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기적을 물리적으로 증명해 보여주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우리의 느슨한 인식을 바짝 조일 것으로 기대됐던 ‘코로나 19의 긍정적 역설’은 고강도로 실시되던 격리조치가 풀리면서, 실은 풀리기도 전에 이미, 대부분 스러졌다. 오히려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환경은 또 다시 뒤로 밀려났다.
일상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기후위기를 자신의 ‘인생위기’로 인식하는 사람 송현섭 씨(42)를 만나러 가면서 마음이 무거웠던건 코로나는 여전하고 환경은 뒷전으로 밀려난 현실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얘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한 “환경문제는 <모두의 문제>지만 많은 사람이 <나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환경론자들이 말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는 표현은 참으로 섬뜩하지만 정작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섬뜩해하는 사람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제가 많은 불편과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환경을 우선에 두는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문제들이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아는 만큼 매 순간 저 자신과 다음 생명을 위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요. 예측 가능한 작은 피해부터 기후재앙까지 저의 작은 실천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막고 싶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정말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고통 없이 살아가고 싶어요”라는 송현섭 씨의 말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그가 춘천에 사는 이유
고향인 원주에서 20대에 가톨릭학생회에 속해 활동하며 ‘운동’에 몸담기 시작한 그는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한 생산자·소비자 간의 직거래 운동인 ‘한살림’에 참여하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다졌다. 그러다 두레생협 활동가로 근무하며 춘천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일하는 10년 차 춘천시민이다.
“소도시의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안녕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좋아서 춘천에 사는 게 즐겁다”는 그의 한때 소망은 독일로 공부하러 가는 것, 혹은 유럽보다 괜히 만만한 듯한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부족하지만 평등해 보이던 쿠바의 아바나, 천국처럼 여겨지던 네팔의 산골 마을에 가서 사는 거였다.
이런저런 사정에 밀려 전기자전거를 타며 출퇴근하고 있는 춘천이 “더 이상 외국의 도시들이 탐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도록” 노력하고 싶단다.
환경에 대한 그의 의식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 된 미래:라다크에서 배운다』를 접하면서 열렸다. 『오래된 미래』는 『녹색평론』을 만들어 환경문제를 몇 뼘쯤 대중 가까이로 당겨놓았던 김종철 선생이 처음 펴낸, 환경에 관한 한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하지만 “라다크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기술이 아닌 자연에 의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정신과 성숙한 문화때문이었죠. 자본주의가 파괴해버린 정신과 문화를 개개인이 회복할 수 있을지, 그 회복의 힘이 자본주의를 이겨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문학과 영화에서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더 현실적일 수도 있겠죠”라는 그의 우려는 세계만이 아니라 당장 우리 지역의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채식주의자 ‘송그린’의 지구력
살아가면서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 자신의 고집대로 살았다는 송현섭 씨. 그래서 직장을 옮기기도 했고, 사람들과 불화도 더러 겪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구나 싶지만 불편함을 오래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 특효약이다. 괴로운 일, 슬픈 일, 견디기 힘든 일이 있으면 잠을 많이 자는것도 유용한 비법이다. “자고 일어나면 시간이 지나서인지 마음도 조금 누그러지고 여유로워진다”는 그의 대답에 괜히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환경문제가 걸리면 여전히 양보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 한편에는 길거리에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만 사도 꼭 비닐봉지를 받는 사람, 물티슈로 방 청소 하는 사람까지 너그럽게 품고 싶어 한다. 궁극적인 해방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 여기는 그는, 하는 일은 따로 있어도 농사를 짓고 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깡마른 모습이 채식주의자임을 확연히 드러내지만 그래서 더 믿음직스러운 그가 헤어지며 조그만 종이상자를 건넸다. 열어 보니 대나무로 된 자루 끝에 ‘송그린의 지구력’이란 글씨와 스마일 표시가 새겨진 칫솔이 나왔다. 그 환한 웃음이 자주 자주 그의 얼굴에도 나타나 주기를!
하창수
소설가이며 번역가. 춘천으로 이사 온 지 30년, ‘경상도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괜히 섭섭해지는 춘천 사람이다. ‘사람 이야기’는 춘천에 살면서
그가 알게 된 사람, 그 누군가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