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후에야 보이는 것들> 종이 위에 색연필, 색종이. 정상명
말벌에게 쏘인 것도 추억이 될까? 왜 안 될 것인가. 말벌에 쏘이고도 멀쩡히 살아 있다면 그것은 다시 맛보기 싫지만 ‘추억의 장’에 첨가될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말벌에게 대여섯 방을 쏘였다. 30년 전 히말라야 밀림에서 두세 방 쏘였고, 금년 여름 툇골 내 마당에 서 두 방을 쏘였다.
툇골의 내 서식지는 큰길에서 산골짜기로 100여 미터 안쪽 골짜기에 있다. 작은 개울의 양안이 산이라 야생의 기운이 그나마 살아 있는 곳이다. 담비를 비롯해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야생동물은 다 지나다닌다.
18년 산촌살이의 처음 10여 년은 너무 잦은 뱀의 출현으로 늘 긴장하고 살았다. 근년에는 뱀이 잘 안 보여서 이제 숲이 이 불청객을 받아주기로 허락한 줄 알았더니만, 금년에는 말벌의 공격을 받았다. 지난달 초순께 나는 2층 처마의 말벌집을 떼다가 공격조 한 마리에게 쏘였다. 이런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에 그렇지 않아도 급한 일들로 고생하는 119대원을 부를 수는 없었다. 방학을 맞은 손자들이 놀러오기 전에 말벌집을 떼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나는 큰마음 먹고 손잡이가 긴 철제 농구를 들고 창밖 처마의 말 벌집을 공략했다. 순식간에 밀어 떨구는 것이 전략이었는데, 벌집의 반밖에 떼어내지 못했다. 벌집 신축 중이던 수십 마리의 말벌은 분노에 차서 누가 자기네 집을 건드렸는지 미친 듯이 찾았다. 재빠르게 창문을 닫았기에 첫날은 무사했다. 그 후, 총 5차에 걸쳐 나는 벌집을 공략했다. 벌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집 짓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후에 더 빠르게 집을 짓는 것 같았다. 결국 5차 공략 때 벌집은 완전하게 떨궈냈지만, 집을 파괴한 외적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공격조 한 마리가 고수가 날린 암기暗器보다 빠르게 내 손등에 봉침을 박았다. 손은 금세 부어올랐다. 쏘인 부위에 얼음찜질을 하다가 차츰 전신에 불쾌한 느낌이 들어 보건소에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타왔다.
그리고 며칠 후, 방충망 안에 서 있던 어린 손자에게 현관에서 요란하게 손을 흔들다가 다시금 뒤통수에 한 방 오지게 쏘였다. 먼젓번 내 공격으로 집을 잃고 새로이 집을 짓던 녀석들 중의 한 마리였다. 이번에는 손등과 비교할 수 없는 지독한 통증 때문에 머리통을 움켜잡고 떼굴떼굴 굴다가 백일홍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인간과 벌의 서식지 싸움
처음 내가 벌에게 쏘인 것은 1992년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2봉 아래의 밀림에서였다. 그때 나는 밀림에 사는 원주민들과 같이 바위에 매달린 석청을 따고 있었다. 쑥처럼 생긴 풀을 태워 연기를 피워 올린 뒤 벼랑에 매달려 사람 몸통만 한 벌집을 장대로 건들자, 수천, 수만 마리의 벌이 허공을 부유했다. 산중 네팔리들은 1만2,000년 전 조상들의 방식대로 석청을 따고 있었다. 벌들이 흩어지자 거대한 황금빛 벌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황홀한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며 감탄하다가 벼랑 아래까지 날아와 꽂힌 몇 마리에게 머리를 공격당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벌들은 아피스 라보리오사(Apis laboriosa)라는 학명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무섭다고 알려진 꿀벌이었다. 해발 4,000미터 언저리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야생화가 밀원蜜源이기에 벌들도 식물들도 모질고 강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초반 석청을 따던 샤먼(허니 헌터)은 우리가 ‘처음 본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나는 형언 안 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머리통을 부여잡고 벼랑 아래 바위틈새에서 뒹굴었다. 두피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다가 바위에 부딪혀 온몸에 멍이 들었지만, 봉침의 고통은 타박상 따위를 밀어냈다.
1984년 애리조나의 곤충학자인 저스틴 슈미트는 독침으로 유발된 고통을 상대평가한 독침 고통지수를 고안해냈다.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않는 독침은 0점,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독침은 4점으로 책정했다.
고통지수는 이렇게 설명되고 있었다. “1.0은 짧으며 강력하다(작은 불꽃이 팔에 난 털 한 가닥을 태우는 듯하다). 3.0은 통렬하고 타는 듯한 느낌과 확실하게 매서운 여운(종이에 벤 상처에 염산을 쏟은 것과 같다). 4.0은 순수하고 강렬하며 찬란한 고통(마치 발뒤꿈치에 3인치짜리 녹슨 못이 박힌 채 불꽃이 타오르는 숲을 넘어 불 속을 걷는 것과 같다)….”
히말라야에서 겪은 고통지수는 3.5를 넘었을 것이다. 이번 여름 툇골의 말벌로 인한 고통지수는 대충 3.0 정도쯤 될 것 같았다.
꿀벌이든 말벌이든, 벌에 쏘이는 일을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소방청 발표에 의하면, 매년 벌에 쏘이는 사건은 4,872건, 연평균 9명이 사망한다. 벌쏘임 사고의 84%가 7~9월에 일어난다. 번식 등 벌의 활동 시기와 인간의 활동이 겹치기 때문이다. 주의하라고 하지만, 벌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에 뾰족한 방법도 없다. “검은 옷을 입지 말라, 향이 진한 화장품이나 향수는 벌을 유인한다” 등의 정보가 전부다.
이것은 인간과 벌의 서식지 싸움이다. 그렇다고 벌을 마냥 적대시할 수도 없다. 꼭 벌의 수분受粉 혜택 감쇠로 인해 농업에 미칠 피해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벌 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벌이 급속 하게 사라지고 있다. 금년 7월에도 꿀벌 80억 마리가 실종되었다는 국내뉴스가 보였다. 대규모로 벌이 사라지는 현상을 ‘벌집 군집 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 CCD)’이라고 하는데,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벌의 멸종이 인간의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다”라는 말을 한 이는 아인슈타인이었다.
올 추석에는 사람들이 벌에 쏘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성각
새나 돌멩이 등 비인간에게 참회를 표하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한 생태주의 작가.
‘삼보일배’나 ‘생명평화’ 같은 개념을 창출했다. 요산문학상, 교보 환경문화상을 받았다.
최근에 『산들바람 산들 분 다』,『나무가 있던 하늘』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