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 기획자인 김보람 씨
책으로 맺은 인연
앤드루 포터라는 미국의 작가가 있다. 그가 첫 소설집 『The Theory of Light & Matter』로 ‘플래너리 오코너 문학상’을 수상한 건 2008년. 그로테스크한 작품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가졌던 오코너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받은 소설 들은 출간이 될 때마다 구입해 읽었다. 앤드루 포터의 첫 책이 『빛과 물질의 이론』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건 그로부터 3년 뒤, 아쉽게도 독자들의 반응을 크게 얻지 못해 곧 묻혀버렸다. 상황이이러니 이 책을 아는 사람을, 그것도 세월이 10년쯤 흐른 뒤에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문학기획자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김보람(38)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와 처음 인연이 닿은 건 화가의 그림을 ‘읽고’ 소설가의 글을 ‘그린’ 아이들의 작품집 『김유정 그리는 아이들, 박수근 쓰는 아이들』이었다. 3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도 듬직했지만 아이들의 글과 그림에 담긴 기발한 표현과 상상 력에 먼저 감탄이 절로 일어나는 책이었다. 글을 그리고 그림을 쓴다는 건 그 자체로 신선하고 즐거운 발상의 전환인 데, 화가 이수현 씨와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1년여 아이들과 작업해 이루어낸 성과가 놀라웠다. 이런 성과를 김 보람 씨는 “편견도 없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아이들의 특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았다.
어린이의 감성으로 쓴 시
아이들의 서툰 문장들 속에서 빛나는 표현을 발견할 때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그는 일곱 살과 열 살 두 아이의 엄 마다. 그런 엄마의 눈으로 쓴 세 편의 동시로 아동문예지 『동화향기 동시향기』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게 작년 봄. “새근새근 잠을 자는 / 아기의 황금 엉덩이가 / 까만 이불 사이로 살짝 보인다”는 시는 제목이 ‘초승달’이다. “말썽꾸러기 동생이 / 누나 별 목걸이 휘두르며 놀다가 / 그만 줄이 툭 터지고 / 별 구슬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는 시 ‘은하 수’에는 그의 두 아이가 보인다. 대학에서 중국학을 공부했으나 지방대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그는 1년여 공시생으로 살던 중 학창시절에 빠졌던 문학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이후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 득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교육심리를 공부하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 상담을 하고 인문학 강의도 하며 바쁘게 살았다. 학생에서 성인까지 독서를 통해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삶을 함께 배워 가는 독서클럽은 그에게는 생 활의 기반이기도 하다. 기계적인 논술을 지양하고 정형화된 도서목록 대신 늘 새로운 책들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식은 그가 책읽기 지도를 할 때 주안으로 삼는 모토 ‘가장 보편적인 문학,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꺼내어 주세요’에 잘 담겨 있다. 그 바탕에는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맞닥뜨렸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책’이라는 신념이 깔려 있다.
춘천, 문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터전
세 살 무렵에 서울에서 이사를 와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다닌 춘천은 그에게 고향에 다름없다. 시립도서관에서 동시를 배워 등단하고, 김유정문학촌에서 소설수업을 들어 신춘문예에도 도전했다는 그는 ‘문화도시 춘천의 수혜자’ 를 자처한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으로 청년기의 불안을 달래며 문학의 가치를 믿게 되었고, 트리나 폴러스의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은 자신다운 삶을 사는 조용한 혁명을 춘천에서 일으켜야지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혼 자만의 삶을 살려 했던 그에게 ‘나’를 위한 미래를 ‘우리’를 위한 미래로 확장시켜 결혼에 이르게까지 한 책은 안도현의 『연어』였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과 함께 지금의 그에 게 글을 쓰는 지표가 되어준 것은 영국의 작가 줌파 라히리 의 『축복받은 집』. 그에게 작가가 소중한 것은 ‘상처를 주지 않는 삶, 배려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곳곳에 닿는 작가의 시선이 왜 중요한지를 깨 닫게 해준’ 작가들의 영향으로 시를 쓰고, 작가의 꿈도 야무지게 다지는 중이다.
가족과 함께, 가족 너머 꾸는 꿈
‘과도하게 외향적인 데다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그에게 안정감을 찾아주는 고마운 존재, 서너 종의 책을 한꺼번에 읽고 일도 두세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느라 스트레스를 자초하고 일의 능률도 떨어뜨리는 ‘못 말리는 멀티태스킹’인 그를 늘 무한 지지해주는 것은 다정한 남편이다. 두 아이와 함께 그의 ‘보물1호’인 남편은 이상 과 현실이 충돌할 때 대화를 통해 답을 찾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교실’을 만들고 싶다며 반장 선거에 나간 큰아이와 한번 꽂히면 밤낮없이 빠져드는 탐 구심 강한 둘째 아이가 저마다의 꿈을 맘껏 펼치며 살아가 기를 바라는 엄마 김보람 씨. 그가 쓰는 동시들이 두 아이를 넘어 모든 아이들의 꿈과 동행하기를 빈다.
하창수
소설가이며 번역가. 춘천으로 이사 온 지 30년, ‘경상도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괜히 섭섭해지는 춘천사람이다. ‘사람 이야기’는 춘천에 살면서
그 가 알게 된 사람, 그 누군가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