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7기 시민의 정부 춘천시장 이재수입니다.
지난 민선 7기 시민의 정부 4년을 회고해 봅니다.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시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하려 했는지 주요한 몇 가지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올해는 『침묵의 봄』과 함께 환경 분야 고전 중 고전인 『성장의 한계』가 출간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유럽의 학자, 기업가, 정치인들이 참여한 ‘로마클럽’이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향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시대를 앞서 과학적으로 분석, 전망한 보고서였습니다.
이들은 무자비한 개발과 급속한 산업화가 계속되면 자원 고갈, 환경 파괴 등으로 인류 문명이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들의 전망은 맞았습니다. 산업생산량, 인구 증가는 가속화됐고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재난, 전염병 발생은 점점, 자주,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50년을 그대로 허비한 결과입니다.
민선 7기 시민의 정부가 제일 먼저 주목한 내용입니다 .
‘국가는 지난 50년을 그냥 허비했다.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 너무 늦었다. 지역에서라도 해야한다. 실천적 활동이 필요하다.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이 고백이 우리 시정부의 출발 지점입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 길을 준비했습니다. 성장에 얽매인 큰 거 한 방의 정치를 벗어던지고 탈성장 기조 속에서 시민이 주도하는 지속가능 도시를 내세웠습니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방식의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이름하여 전환도시입니다. 양적 성장에서 삶의 질로의 전환입니다. 대상에서 주체로의 전환입니다. 무한경쟁에서 상생으로의 전환입니다. 파괴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입니다.
그 첫 번째 일이 1억 그루 나무 심기였습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도심 내 숲과 나무들이 죄다 잘리고 파헤쳐져 사라졌습니다. ‘도시의 숲은 우리의 숨’이라 한 김훈의 말을 빌리면 우리의 숨통이 끊기고 있는데 누구도 저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헉헉거리는 도시의 숨통을 이어야 했습니다. 4년 동안 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도로마다 빈자리에 어김없이 나무를 심었습니다. 도심 속 자투리 땅마다 나무를 심었고요. 바람길 녹지축을 만들어 산과 호수의 바람을 도심으로 유인했습니다. 시골길도 푸르름이 일게 했고요.
담벼락을 허물고 주차장 대신 나무를 심게 했습니다. 아마 3~4년 뒤 도시의 녹색피복이 다시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도시의 생명성도 활기를 띠게 되겠죠.
다음으로 우리가 중점을 둔 내용으로 쓰레기 정책의 대전환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구호 속에 매립과 소각 위주의 정책에서 감량과 재활용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청소과를 자원 순환과로 이름부터 바꿨습니다. 정책의 기조 변화를 제대로 드러낸 것이지요. 시청부터 시작된 ‘1회용품 없는 청사 만들기’는 춘천의 8개 기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시민이 주도하는 생활 속 자원순환 실천 활동들은 시골 도심 구분 없이 진행되었고 녹색장터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확대 전개되기 에 이르렀습니다.
코로나19로 쓰레기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춘천의 재활용률은 30% 이상 확대되고 쓰레기 배출 총량도 늘기보다는 적정성이 유지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도심 속 도로를 지배하며 매일 매연을 뿜어대는 자동차를 줄이는 일도 우리 시정부의 전환사업의 핵심입니다. 자동차는 정말 도시의 위협 요소입니다. 춘천의 공기 질이 전국 최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지만 청정하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미세먼지 탓도 있지만 분지인 도시 공간 구조상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이 도심 안에서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이 불가피했습니다.
자전거와 보행의 편리와 안전을 위한 도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소양2교에서 공지천까지 2.3km 도로가 그 상징이고 시작입니다. 자동차 독점의 도로 시대를 마감하고 사람과 자전거와 숲과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집니다.
캠프페이지 공원과 어우러져 춘천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될 것입니다.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시내버스 운용체계 개편과 공영화는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었습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선택하게 될 새로운 버스 이용객들을 위한 개편 방향이었죠.
예상은 했으나 초기 불편이 너무 컸고 어르신들을 힘들게 해드린 게 내내 가슴이 아픕니다. 민선 8기 시정에서 좀 더 지혜롭게 편리를 보완해 갈 것이라 봅니다.
그 외에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전환사업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기·수소 자동차 보급 확대, 에너지 페이를 통한 시민들의 탄소 감축 활동 지원, 지속가능 도시 공간 활용 계획 수립, 수소 융복합 기지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거점 도시 발판 마련, 차세대 신개념 에너지원인 인공태양 춘천 유치 활동 등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 길을 기획하고 하나 하나 추진해 왔습니다.
그 새로움이 때로는 낯설고 불편했죠. 그러나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우리 도시의 미래를 위한 길이었습니다.
1억 그루 나무 심기 선포식
다음으로 외부의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의 자원으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양적 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중심으로 하는 전환도시의 핵심 내용입니다.
우리의 자원으로 으뜸인 것은 누가 뭐래도 문화예술입니다. 문화도시다운 문화도시의 참모습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도심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연이 펼쳐지고, 시민들이 스스로 문화를 즐기고 예술을 만끽했습니다. 정부로부터 문화도시로 인정받아 200억원의 예산도 확보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문화 살롱이고 문화 봄바람이 부는 춘천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1인1예’로 문화 감성을 키웠고, 예술인들은 춘천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춘천이 매력 있고 품위 있는 도시임을 증명하고 연구하는 춘천학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마을마다 이야기 보따리가 가득하니 보석처럼 다듬어 뽐내기를 주저하지 않죠. 시민의 자존감이 높고 품위 있는 도시가 진짜 행복도시입니다.
성장중독 사회는 자연만 파괴한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을 총체적으로 수렁에 빠지게 했습니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이웃을 잃었습니다. 가족마저 흔들리게 했습니다.
이웃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환과고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국가는 시스템으로 복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당사자들의 복지욕구에 대응한다 하지만 평균적인 접근은 항상 설계주의 함정에 빠집니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개개인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 줄 뿐 행복으로 이어지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웃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이웃의 어려움을 해소하자는 ‘선한 이웃 마을돌봄 프로젝트’가 가동되었습니다.
이웃이 이웃해 있는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시정부 공무원들과 복지기관 그리고 각종 관련 기관의 담당자들이 모여 함께 대책을 세우고 방안을 찾습니다. 마을 복지기획단이 만들어지고 일상적 지원활동을 수립하고 진행했습니다.
600여 위기가구가 발굴되었고 서로 돌봄으로써 어려움을 해소해 가고 있습니다. 이웃이 있어 행복한 나눔의 도시 춘천입니다. 이웃의 발견, 이것이 우리 시정부의 최대 역점이었습니다.
아이들 얘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안전 안심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지역공동체의 중요한 책무라 여겼습니다.
무상급식이 지역사회의 오랜 운동 끝에 성사됐지만 식자재 조달은 기존의 시장 거래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저가 입찰을 통해 공급되다 보니 생산지가 불분명한 농산물이 식탁에 올랐습니다. 아이들 먹거리는 상품이 아닌 생명입니다. 지역 내 친환경 농산물 생산농가를 육성하고, 먹거리 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생산자 이름을 명시하여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춘천의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이용하게 되어 그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윤을 우선하는 상품 거래를 대신해 농업인의 인격과 생명이 깃든 농산물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아이들, 부모님, 농업인, 학교 모두의 행복일 것입니다.
시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장,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정치인이 나서고 관이 주도하니 시민은 뒷전이었죠. 매사 관에 의존했습니다. 관이 나서야 편했고 의존적 사회 분위기는 내면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민이 주도하도록 하는 체제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시장이 나서지 않는 것부터 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어왔던 읍·면·동 초도순시를 없애고 마을별로 주민들이 직접 의제를 발굴하고 총회를 통한 지역계획을 갖게 했습니다.
관이 빠지고 시장이 나서지 않으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제들이 채택되었습니다.
새로운 상상력이 마을마다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해내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잼잼 놀이터가 그 대표적인 사례고요. 마을별 아이돌봄체계를 구축한 것 또한 그 성과입니다. 산책로에는 새로운 꽃길이 조성되고, 동네 길가에 아이들 그림이 걸렸습니다. 아파트와 마을들은 축제 준비로 들떠 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도시 춘천, 시동이 걸린 것입니다. 도시의 현재도, 미래도 시민이 만들어 갈 것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도시의 민주적 작동원리이고 도시운영체계입니다.
춘천이 지난해 ‘국제 슬로시티’가 되었습니다. 슬로시티의 우리말은 참살이입니다. 좋은 삶, 행복한 삶입니다. 슬로시티의 상징은 달팽이입니다.
달팽이 껍질은 나선형으로 2배씩 커지다가 갑자기 줄어듭니다. 더 커지면 자기 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죠. 자연은, 생명은 어떤 한계점에서 스스로를 통제합니다. 자기복원력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놓인 첫 세대이자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합니다.
이제 한 시민으로서 시민들이 만든 변화를 잇는 데 함께 하겠습니다.
퇴임을 앞두고 4년을 정리하다 보니 소회의 말씀이 길었습니다.
재단법인 지혜의 숲, 협동조합, 농업회의소, 장애인 정책, 대학도시, 청년청, 먹거리 지역내 선순환 체계 구축, 서로돌봄마을… 다 전환적 시도였고 문명의 틀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전환 과정에서 부족한 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혼선과 불편에 대해서는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보내주신 성원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마을, 도시의 주인으로 진짜 행복한 삶의 주체가 되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민선 8기의 성공을 기원하며 시민 여러분의 성원을 당부 드립니다.
글 이 재 수
2018년 7월 1일에서 2022년 6월 30일까지
민선7기 시민의 정부 춘천시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