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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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8

2022.07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 31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 의암리 장미마을로 가는 길

유 혹  

  대원사는 고요하다. 

  아침 햇살이 구름 사이로 내뻗는 날, 우린 드름산 초입에서 개다래나무를 발견한다. 

  누가 초록 잎에 흰 페인트칠을 해 놓았을까. 

  참으로 재미있는 나무지요? 

  조각가이자 다인茶人인 숲해설가 이형재 님. 그는 명상하는 사람이고,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말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는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운다.


  이 나무의 진짜 꽃은 아주 작아요. 

  너무 작은 꽃이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요. 향기도 아주 미미하고요. 그러니 먼 데 있는 곤충들이 알 리가 없지요. 

  개다래나무는 궁리 끝에 제 이파리에 페인트를 칠했어요. 군데군데 이파리마다 희디흰 빛깔이 눈부시지요? 이것이 초록 잎과 어울려 하얀 꽃으로 보이게 된 거예요. 멀리서 이 환한 가짜꽃들을 보자마자 나비나 벌들이 단숨에 달려올 건 뻔한 일이지요? 

  하지만 속았구나, 느낀 순간, 

  여기야 여기!

  그 소리 나는 쪽을 곤충들이 바라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작은 꽃들이 맺힌 걸 이내 발견하게 되겠지요? 

  아, 멋진 유혹이군요. 

  아름다운 유혹이죠. 

  수정受精하는 일이 이렇게 놀랍다니…. 

 식물의 세계가 경이로워요.    




  모두 한마디씩 경탄의 소리를 낸다. 

  개다래 맛은 어떤가요? 다래처럼 단가요? 

  아뇨. 시고 맛없어요. 사람에겐. 하하… 

  이 개다래나무, 짓궂은 장난꾸러기 같지 않나요? 

  우린 철없는 아이처럼 웃는다. 우린 숲으로 들어선다. 이 울창한 나무숲이 우릴 유혹하는 듯싶다. 그래, 하나의 나비, 하나의 벌이 되어 이 숲의 유혹 속으로 푹 빠져 보자. 



‘의암호’ 그림 이형재



숲으로 난 골목길 

  어제 내린 비로 숲은 젖어있다. 

  그동안 가문 날이 오래 지속된 탓에 숲은 잔뜩 목말라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단비가 숲으로 왔다. 숲은 갈증을 해소하고 생기를 되찾았다. 이파리 이파리마다 뽀얀 비의 기운이 숲속 가득히 잠겨 있다. 

  고층아파트인 잎갈나무숲을 지나면, 원시시대의 관중貫衆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화살의 과녁 같다 하여 관중이라 부른다. 이 고사리류는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십 년 전, 나는 홍천 미약골에서 엄청나게 큰 양치식물을 본 적이 있다. 일명 호랑고비. 나는 이 원시의 고사리류를 본 뒤, 집에 돌 아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신생대의 매머드가 거대한 관중 속에 파묻혀 잡아먹히는 꿈을.

  조심들 하세요. 

  저 호랑고비가 그대들을 잡아먹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내 겁박에 일행 중 그 누구도 겁먹지 않는다. 

  어디선가 숲에서 후드득 장끼가 날아가는 소리 들린다. 흡사 ‘거짓말, 거짓말’ 그런 소리를 들려주는 듯이.  


모두 우리의 이웃 

  산딸기가 길섶에 빨갛게 여물어 있다. 산딸기 맛은 새콤 달콤하다. 이빨 사이로 오도독 깨물리는 그 신신함에 정신이 다 쇄락해지고, 산행의 목마름이 말끔히 가신다.

  영롱한 붉은색 산딸기는 산속의 천연음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어느 산길엔 보라색 두메꿀풀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어느 산길엔 둥굴레 가족이 둥글게 모여 오순도순 수군거린다. 

  설마 우릴 흉보는 건 아니겠지? 

  특히 이 숲속 골목길 곳곳엔 생강나무가 큰 마을을 이루고 있음을 금세 알게 된다. 그 노랗던 꽃들이 지고, 가을이 오면 작고 까만 열매를 맺게 되리라. 

  알싸한 생강 냄새를 그리워하며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 숲길을 오르는 길. 

  숨이 차다 싶을 때, 이윽고 우린 시야가 탁 트인 정점에 다다른다.


이토록 아름다운 춘천 

  하얀 비단이 깔린 짙푸른 하늘. 반짝이는 붕어섬과 중도. 멀리 화악산 중봉과 매봉이 아득하고, 삿갓봉이 가물거린다. 용화산은 어디메인가. 젊은 날 꿈꾸며 넘었던 청운의 산. 어라! 봉의산도 보이네? 저토록 당당한 오봉산과 사명산이 봉의산을 시위하네? 

  거울 같은 호수가 하늘 구름을 안고, 초여름 산을 안고, 짙어가는 숲을 안은 채, 유월의 춘천을 속삭인다.


내려가는 길은 겸허하다  

  어서 와요. 

  말나리 몇 송이가 산들바람에 흔들린다. 휴대폰 화면에 말나리가 흐리게 인사한다. 

  꽃은 시듦을 아는 철학자. 특히 산속 골목에 핀 꽃은 한 없이 겸허하다. 

  산은 오름에서 배우지 않는다. 산은 내림에서 배운다. 그것은 느림을 통해 발견되는 기쁨이다. 그것은 주변에 대 한 깊은 사랑이다. 이 발견의 기쁨을 어느 시인은 이렇게 시로 표현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나는 말나리의 인사를 가벼이 받는다.

  산들바람이 내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이 내림이 끝나면 우린 새로운 마을, 고요한 마을에 당도하게 되리라. 


유월의 장미마을, 의암리  

  신동면 의암리는 드름산 기슭에 자리한다. 옛 경춘로엔 의암댐과 신연교가 있다. 이 의암댐으로 하여 대바지강은 호수가 되었다. 옛날 신연교 철교를 통해 철마鐵馬가 들어 왔다. 일제강점기 때는 기차를 철마라고도 불렀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낯선 여행객의 소근거림


1.안동초 피는 뜻은   2. 접시꽃 당신   3.쥐똥나무길

 


  의암리 마을은 드름산이 품은 비밀의 마을이다. 이 마을은 댐을 낀 길을 휘돌아가야 나타난다. 

  물론 신설된 의암교 사잇길을 통해 이 의암마을로 진입 할 수 있다. 하지만 휘어진 의암교에선 이 마을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마을이다. 요양원이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고, 아침저녁 종이 울리는 교회가 있고, 도랑길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드름산의 또 다른 산길이 뻗어있는 동화 같은 마을. 

  초입새에 붉은 장미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렇다. 담장에도, 개울가에도, 장미는 붉디붉다. 

  그러나 장미만 우리를 맞이하는 건 아니다. 

  인동초꽃이 향기를 머금고, 접시꽃이 흰 분첩으로 화장을 얼른 한 뒤 수줍게 우리를 반긴다. 미국에서 온 윤 교수가 접 시꽃과 나란히 서서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이 된다. 쥐똥나무 울타리엔 눈꽃 같은 꽃들이 팝콘 터지듯 왁자하다. 

  점심 때가 되자 인적 없는 골목길에서 어디선가 나타난 마을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버섯 하우스나 밭둑에서, 오이·호박 비닐하우스나 마늘밭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돌아와 조용히 쉴 집으로 스며든다. 

  자두나무 그늘에 앉은 개 한 마리, 컹컹 낯선 객들을 향해 짖는다. 겨울 난로가 길가에 버려진 듯 놓여 있어, 어디 론가 열차를 달고 떠날 것만 같다. 칙칙폭폭 뚜우! 

 밤이 되고 달빛 마을이 되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늘 레일을 타고 매일매일 우주의 먼 별여행을 다녀오는 건 아닐까. 

상상은 낯선 객들의 자유이기에 마냥 즐겁다. 

그래.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골목 골목을 향해 동요 부르듯, 소리치고 싶다. 

달 뜨면 어른들도, 아이들이 되고 싶다. * 






최돈선 시인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 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 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