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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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3

2021.4
#봄내를 꿈꾸다
2030 춘천일기
자전거 타고 본 내 고향 춘천의 황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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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empty_wm

 


 봄은 주로 해방과 시작의 계절로 묘사된다.

취준생에게 봄이란 나태함으로부터의 해방이자 구직 전쟁의 시작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절을 반기는 이유는 겨우내 참아왔던 자전거 러버(Lover)로서의 열정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전거 러버가 된 역사는 5년 전 일본 홋카이도 여행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걷는 건 싫어하고 성미는 급한 내게 자전거는 매력적인 교통수단이었다.

4박 5일 내내 엉덩이에 알이 배길 정도로 자전거를 타며 홋카이도의 도시와 자연을 눈에 담았고

그때 그 여운을 이어 가고 싶어 귀국하자마자 덜컥 자전거를 구입했다.


친구들과 처음 한 라이딩.
샘밭 카페에서 멍 때리고 돌아오는 길, “저 노을과 능선을 봐. 수묵담채화 같지 않니?”라고 했다가 살면서 들을 야유를 원 없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자전거를 살 때만 해도 고향에서 타는 자전거가 낯선 여행지의 자유로움과 특별함까지 재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거의 없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봤자 학교와 집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꼴랑 몇 킬로미터가 다이고, 멀리 나가봤자 내게 익숙한 장소일 뿐

새로움을 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도심이라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였다.

강 중간중간, 홀로 서 있는 작은 섬과 버드나무, 그 뒤로 보이는 산의 능선과 붉은 해는 너무나 조화로웠고

그 풍경들이 자전거 속도에 맞춰 변하는 것이 새로웠다.

바람을 맞으려 속도를 내고 싶다가도 너무 빨리 지나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면 이해될까.


 남춘천역에서부터 공지천, 중도 다리를 지나 인형 극장의 어느 카페까지, 초보자도 탈 만한 자전거 코스를 추천한다.
봄이면 공지천에 벚꽃나무가 만개해 그 길을 지나는 동안만은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 농담 삼아 일본의 강원도라 했었는데, 정작 20년 이상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은 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샘밭의 소나무가 우거진 어느 카페에 다다를 때까지 약간의 억울함과 흥분, 환희의 감정이 나를 가득 채웠다.

건조한 일상의 공간이 설렘의 여행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때 즈음, 내 고향, 춘천에 대한 생각도 변한 것 같다.

그전만 해도 춘천은 내게 떠나고 싶은 도시였다. 춘천을 떠나 상경하는 것만이 성공하는 삶이고, 그게 내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맹목적인 믿음은 강박이 되었고, 열등감을 낳았다. 나는 대학 시절 절반을 내 실패를 되뇌면서 나 자신을 미워하며 보냈다.

당연하게도 나의 재능과 장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것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춘천은 남아서 간직하고 싶은 도시이다.

설령 어떤 사정으로 떠난다 해도 다시 돌아와 평생을 살고 싶은 진짜 고향으로서의 의미가 된 것이다.

그 이유는 글쎄, 자전거 도로를 잘 만들어 놓아서? 물론 그 이유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성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라고 말하는 게 더 멋들어져 보이니 그렇다고 하겠다.


 

라이딩 후에는 무조건 고기로 허기를 채운다.
풍물 시장에 있는 ‘풍물 생고기’. 야외 자리는 늘 만석인데, 자전거 탄 후 다시 실내로 들어가는 게 답답해 웨이팅을 감수하곤 한다.

 

라이딩을 즐긴 후로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서 시작한 나에 대한 탐구는 내 삶의 방향성을 바꿨다.

내가 몸을 쓰고 밖으로 에너지를 쏟을수록 힘을 얻는 사람임을 알게 된 후 스트레스와 우울을 자전거를 타며 풀었고,

땀 흘리는 걸 싫어했지만 선크림이 흘러내리고 앞머리가 젖어 달라붙어도 신경 쓰지 않는 경지가 됐다.

과제나 팀 활동에서도 최대한 나서지 않고 최소한의 책임만 지려 했던 태도들을 버렸다.

오히려 주도하고 꾸리는 일들에 나는 더 큰 열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나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쉬는 날이면 방안에 틀어박혀 잠만 자던 게으른 베짱이 생활을 청산하고 부지런한 베짱이로 거듭난 것이다.

내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나는 아직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눈이 녹고 찬기가 사라지는 이 계절,

또 한 번 페달을 밟으며 이 불안을 다스려보려 한다.

앞으로 만날 길들에 평지만이 가득하길, 행여나 있을 언덕들이 그리 높지 않길, 마음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인형 극장 근처의 ‘비포선셋’ 카페에서 한 장.

야외 테라스에 앉아 직장인 친구가 사주는 케이크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건 취준생의 특권이다.

 


 

 



박수빈은 3월 공채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운 28세의 취업준비생이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삶의 낙인 사람. 취업을 하면 차보다 전기자전거를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