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인해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며 누워 있다. …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 중이라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짧고 고통스러운 김유정의 일대기 재조명
춘천 출신 소설가 김유정 선생이 생을 마감하기 11일 전인 1937년 3월 18일 친구 안회남에게 남긴 편지의 일부다. 이 편지를 읽다 보면, 김유정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교과서에 실린 ‘봄봄’과 ‘동백꽃’을 비롯해 ‘아내’ ‘소낙비’ ‘산골나그네’ ‘솥’ 등을 쓴 김유정은 근현대문학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은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재탄생, 연극과 오페라, 무용 등의 형식을 빌려 관객들과 만나 왔다.
그 시절의 시대상 고스란히 담아
강원도립극단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춘천문화재단과 함께 뮤지컬 ‘유정-봄을 그리다’를 제작, 무대에 올린다. 이 뮤지컬은 김유정의 작품이 아니라 짧고 고통스러웠던 김유정의 삶과 사랑을 재조명하고 있다. 김유정은 서른 번째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 짧은 인생은 그의 소설처럼 강렬하다. 배경은 1937년 봄 실레마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신의 유정과 영가(영혼)의 유정이 등장, 김유정의 삶을 따라간다. 김유정 작가의 삶 속에 소설의 여러 장면이 겹치며, 비로소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명창 박녹주에 대한 무모한 사랑은 유정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해학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처참했던 시대를 상징하는 절규였다는 것을….
김경태·최지순·송창언 등 원로배우도 힘 보태
이번 작품은 강원도립극단의 배우 이외에도 전문 뮤지컬 배우 김지철(현신 김유정)·김경민(영가 김유정)씨, 춘천에서 활동하는 배우 등이 출연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유정 소설 중 연극으로 처음 제작된 ‘봄, 봄’(1975년)을 연출했던 최지순 씨와 그 연극에 출연했던 김경태 씨가 무대에 오른다. 또 춘천에서 활동하는 원로배우 송창언,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소리꾼 김지희, 퓨전국악그룹 ‘퀸’ 멤버 김가을 씨 등도 출연한다.
김경태 씨는 “김유정 선생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많은 작품을 해 왔지만, 선생의 일생을 그린 작품은 처음 시도해 본다. 김유정이라는 인물에 집중한다는 것에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에 처음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고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만날 수 있어
‘유정-봄을 그리다’의 음악감독은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엄태환 씨가 맡았다. 엄 감독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김유정 선생 작품을 여러 번 읽다 보니 꿈에도 나올 정도였다. 김유정 선생의 삶과 그 시대를 잘 이해하게 됐고, 그래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강원도 아리랑을 비롯해 국악과 클래식, 팝 장르를 아우르는 곡을 쓸 수 있었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혁수 예술감독(맨 위)과 공연 연습을 하는 단원들
김유정의 서른 번째 봄 함께 느꼈으면
희곡을 직접 쓴 김혁수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은 “여러 밤을 새워 가며 ‘유정-봄을 그리다’ 대본을 썼다. 감히 김유정 대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두려워, 망설이면서도 결국은 뮤지컬 대본을 탈고했다. 그리고 공연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다시 연극으로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김유정이 그토록 기다렸던 서른 번째 봄을 이제는 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김유정이 기다렸던 그 봄, 그것은 김유정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의 새로운 봄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 봄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춘천 외 도내 6개 지역·경기도 하남서 공연
한편 ‘유정-봄을 그리다’는 5월 20~22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에 오른다. 이어 5~6월 강릉, 태백, 속초, 삼척, 영월, 정선 등 도내 6개 지역에서 공연된다. 또한 김유정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경기도 하남시와 경주에서 열리는 국공립 극단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
일 시 5.20.(금) 오후 7시30분, 21.(토)·22.(일) 오후 3시
장 소 춘천문화예술회관
문 의 ☎255-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