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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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6

2022.05
#봄내를 품다
최성각의 녹색이야기 ⑤
‘푸른 오월’이 질문하고 있는 것

<우리들이 살고 싶은 세상> 종이 위에 색연필, 2015, 정상명



이 나라 오월은 참 아름답다. 긴 잿빛의 겨울을 새로운 초록으로 물들인 오월은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맞춤한 말은 정확한 비유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오월을 맞이하면, 대개의 보통 사람들은 ‘어린이날’ 이 떠오르기 쉽고, 이어서 소파 방정환 선생도 떠오를 것이다. 생각할수록 방정환 선생은 훌륭한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짧게 사신 분이건만, ‘어린 사람’에게 ‘어린이’라는 애정이 담긴 인격적 호칭을 붙여주셨기 때문이다. 그 험악한 세월 속에서도 소파의 머릿속에는 진작부터 가장 질 좋은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은 어린이를 어린것들로 ‘내려다보지’ 않으셨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관리 대상, 훈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늘 보드랍게 대해주십시오”라고 당부하셨다. 선생은 어린이를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개체로 보시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가장 고급의 철학적 호칭을 개발해내신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질문 

이 눈부신 계절 오월에 한 ‘어린 사람’이 떠오르니,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다. 우리 관습상 그레타 툰베리는 청소년으로 분류되겠지만, 나는 어린이를 ‘어른이 아닌 사람’ 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툰베리가 환경파괴와 기후 위기에 침묵하는 주류 정치인에게 항의하는 차원에서 등교 거부 운동을 벌인 때는 2018년부터였다. 툰베리는 등교 거부 운동 이후 ‘기후를 위한 파업 집회’에도 세계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즈음 툰베리는 이 행성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가장 분노한 ‘어린 사람’의 대명사였다. 2019년에는 ‘유엔기후 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했고, 트럼프를 매서운 눈매로 째려보는 사진으로도 유명해졌다. 그런 활동들로 툰베리는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툰베리의 주장을 요약하면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어른들이 망쳤다. 그런데도 왜 어른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초 열여섯 살 소녀, 툰베리보다 더 맵고 날카롭게 인류의 양심을 찌른 이름이 따로 있을까? 

툰베리의 어머니는 스웨덴의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 아버지 직업은 연극배우였으나 나중에는 전업주부로서 딸을 돕는다. 어느 날 툰베리는 가족과 함께 태평양에 떠 있는 거대한 쓰레기 산(Great Pacific Garbage Patch, GPGP)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어머니와 지구환경, 특히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나요? 엄마처럼 유명한 사람들은 왜 지구온난화에 대해 아무 소리도 않고 사나요?”라고.



등교거부운동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 

툰베리의 출현 이후 전 세계의 ‘어린 사람들’은 등교 거부 운동에 나섰다. 

기후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더 연구할 거리가 없다는 것을 자인했다. 물론 온 세상 의정부나 기업들은 기후 위기와인간 활동은 무관하다고 우 겼다. 필자가 환경운동을 펼쳤던 20년 전에도 “기후 문제와인간 활동은 상관없다”는 ‘썰들’이 난무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환경에 대해 그것이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인류세’(인간 활동이 지구환경에 미친 영향을 의미하는 지질시 대)라는 말도 그래서 출현했다.

“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어른들을 우리가 믿지 못하는데, 우리가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 호주 총리가 학교에 안 가려는 아이들을 훈계하자 아이들이 대꾸한 말이다. 당신들(어른들)이 만든 세계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잃었다, 그런 당신들에게는 더 배울 게 없는데 왜 학교에 가야 한단 말인가라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의 어린 사람들도 등교 거부 운동을 펼쳤다. 심한 제지나 탄압을 받지는 않았지만 탄압보다 더 끔찍한 반응인 무시를 당했다. 어떤 언론도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다루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아량과 여유가 없다기보다 위기를 실감하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린 사람들이 계속 외쳤다.

“죽은 행성에는 일자리가 없다”, “정부는 우리 미래를 불태우고 있다”, “지금 행동하든지 미래에 허우적거리든지”…라고. 

마땅한 주장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른들은 그 말에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들을 “보드랍게 대해주자”고 했지만, 어른들은 “시끄럽다. 너희 땐 아무 소리 말고 공부나 해야 한다”며 보드랍게 대해주지 않고 있다.

얼마나 더 빠르게 기후재앙이 전개되어야 세상은 변할 수 있을까? 도대체 미래에 대해 우리는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오늘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을 위한 일들일까?

다시 찾아온 오월이 묻고 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당신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최성각

새나 돌멩이 등 비인간에게 참회를 표하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한 생태주의 작가.

‘삼보일배’나 ‘생명평화’ 같은 개념을 창출했다. 요산문학상, 교보 환경문화상을 받았다.

최근에 『욕망과 파국』, 『산들바람 산들 분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