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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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5

2022.04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 28
스무숲엔 스무나무가 있을까
- 퇴계동 스무숲 산책길

스무숲성당 전경


스무숲은 어디 있는가.

아내와 나는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갈까, 망설임도 없이 아내와 난 스무숲성당으로 향한다.

스무숲성당은 안마산 기슭에 있다.

붉은 벽돌로 잘 지어진 스무숲성당은 원형의 미술관 같은 느낌이다. 

저 안에 십자가가 모셔져 있고, 예배시간이면 기도문과 성가가 울려 퍼질 것이다. 신부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신도들의 귀에 청아한 울림으로 가슴을 적실 것이다. 사랑하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마당 잔디밭엔 하얀 대리석의 성모상이 자애롭게 아이를 품고 있다. 옆에 비치된 양초에 불을 붙여 기도하고 싶다고 아내가 말한다. 그런데 양초값 이천 원이 없어 단념한다. 다음에 꼭 와서 촛불을 드 리자고 마음으로 약속한다. 그리고 성모상에 쓰인 글귀를 읽는다.


성모상 


성모님!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저의 마음을 이 초에 담아 바칩니다. 저와 제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아내의 합장은 경건하다. 아내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두 팔 활짝 벌린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 상이 서 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했던 성 프란치스코. 10월 4일이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인데, 이 성당도 그날 그분의 거룩한 행적을 기념할 것이다. 가난을 몸소 행한 성 프란치스코를 사람들은 제2의 그리스도라 부른다.    


안마산 그림 이형재 


화살나무 울타리 안쪽 사제관도 붉은 건물인데, 마당엔 세 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파스텔 톤으로 파랗다. 

아내와 나는 성당 뒤편 언덕길을 오른다. 안마산으로 오르는 길가, 카페 ‘바하’에 가서 차 한 잔을 마실 생각에서다. 한적한 길이다. 오른쪽으로 별장 같은 집들이 모여 있다. 


고랑 진 두덕밭은 아직 작물을 심지 않았다. 밭 건너 시옷자 지붕을 한 서구식 하얀 건물 세 채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큰 창 하나에 네모난 작은 창들이 점점이 나 있는 건물은 동화책 표지 같다. 그런데 카페 ‘바하’는 눈에 띄지 않는다. G선상의 아리아 가 흐르는 곳은 어디인가. 마침 젊은 여성 한 분이 내려온다. 나는 바하를 묻는다. 젊은 여성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카페라네요. (혹시 바흐를 바하로 잘못 안 건 아닐까). 역시 모르겠다고 젊은 여성은 미소 짓는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핸드폰을 검색해 보았는지 내려가던 젊은 여성이 좀 떨어진 아랫길에서 우리에게 친절히 알려준다. 아, 그 카페는 없어졌어요. 대신 헤어숍이 들어왔군요. 발길을 돌린다. 


내려오는 길에 길 옆 참나무 숲 사이로 언뜻 보이는 흰 건물이 보인다.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인데, 세잔의 그림 같 은 풍경이다. 자주 숲길을 오르내렸는지 발자국 흔적이 등성이까지 뻗어 있다. 스터디카페 앞 목책 울타리에 줄기가 반질반질한 배롱 나무 한 그루가 보초를 서고 있다. 그 바로 옆 은행나무 묘목밭을 지난다. 이윽고 뜨란채 아파트촌 삼거리에 다다른다. 매끈한 조약돌로 만든, 운치 있는 돌담이 제법 고풍스럽다. 스무숲 부동산. 스무숲아로마. 스무숲사우나 간판이 유난히 스무숲을 강조하고 있지만, 가로엔 벚나무가 서 있을 뿐이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는 듯 물기가 가지마다 촉촉이 젖어 있다.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선, 작은 공원 안에 덩그러니 미끄럼틀 하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늑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찻집 ‘레스트’의 문을 밀고 들어선다.내부엔 20대 남녀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고, 창 가엔 앳된 세 젊은이가 주스를 마시고 있다. 짧은 바지를 입은 젊은이의 종아리엔 온통 푸른 문신이 새겨져 있다. 주인인 청년은 빵을 주문한 손님을 위해 하나하나 정성스레 빵을 포장한다. 


카페 ‘레스트’의 조안 코넬라 그림 


그런데 벽마다, 아니 주방에조차도, 스페인 화가 조안 코 넬라의 그림이 걸려 있다. 코믹, 괴팍, 엽기, 익살, 기발함의 작가, 가장 악동적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조안 코넬라. 


나는 아메리카노, 아내는 카푸치노 한 잔씩을 시킨다. 아메리카노는 부드러운 맛이다. 나는 찬찬히 넓지 않은 찻 집을 둘러본다. 밍크선인장 위에 걸린 그림. 안경을 벗으니 안경에 눈알이 묻어 있고, 중년 사내는 눈이 없는 얼굴로 웃고 있다. 


화장실 입구에 걸린 그림. 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는 사 람 등에 올라타고, 높게 달린 소변기에다 오줌을 누는 남자. 붉은 블라인드 쳐진 유리창 천장엔 달걀 같은 네 개의 동 그란 백열등이 태양처럼 달려 있다. 유리창을 가린 블라인 드 사이로 공원의 소나무가 묵화처럼 걸려 있다. 

우린 찻집을 나선다. 저쪽 골목으로 빠져들면 저녁마다 소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오게 마련이다. 그 냄새는 골목을 빠져나와, 지나는 사 람들을 유혹한다. 아내와 나는 노시인의 초대로 그 고깃집 에서 불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해장국집을 돌아가면 낡은 간판의 찻집과 각종 음식점이 즐비한데, 그 골목 끝에 안마산이 버티고 있다. 


아내와 나는 걷는다. 

스무숲길은 한적하다. 스무숲길엔 스무나무가 없다. 느티나무나 벚나무가 가지에 새순을 틔우고 있다. 곧 꽃망울을 터뜨릴 터이다. 스무숲 공원도 마찬가지다. 역시 공원에 도 스무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느티나무와 신나무, 상수리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있을 뿐이다. 어린이 놀이터엔 검은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가 서 있고, 주저앉아 두 아이를 돌보는 빨간 외투의 할머니가 아이들 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 햇살이 한결 따사로워진다. 공원농구장엔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그 농구장 길 건너 춘천문화원과 cgv 건물이 보인다. 이끼처럼 바위에 착 들러붙어 있는 나무를 아내가 가리 킨다. 누운 향나무네. 그러고 보니 정말 누워있군. 난 기어가는 거 같은데…. 내가 중얼거린다. 이건 이형재 조각가 님이 알려준 거예요. 우린 그가 근무하는 화목원에 간 적이 있다. 이형재 조 각가는 유능한 숲해설사여서 나무에 대해 늘 해박한 지식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 숲속으로 조그만 인형의 집을 발견 한다. 뻥 뚫린 입구로 빨간 체크무늬의 담요가 눈에 띈다. 고양이집인 모양이라고, 고마운 어느 분이 추운 겨울을 따 뜻하게 나라고 집을 마련해 놓은 것 같다고 아내가 말한다. 


세 채의 동화나라   


스무숲길    


누운 향나무 


한겨울 포근히 지내라고 누군가가 고양이집을 지어놓은 모양이다. 저녁이면 이 보금자리로 길고양이가 찾아들 것이다. 고개를 쳐드니 안마산이 바로 코앞이다. 스무나무 없는 이 스무숲길엔 곳곳이 스무숲이다. 스무 숲중개소, 스무숲갈빗집, 스무숲사우나, 스무숲찻집이란 간판이 여기저기 즐비하다. 문득 김삿갓의 걸식시가 떠오른다. 그 시에도 스무나무가 등장한다. 


스무나무는 시무나무의 또 다른 이름이다. 20리목이라 하여 스무나무라 한 것 같다. 줄기에 가시가 뾰족이 돋아있 는 나무이다. 느릅나무과이고, 봄에 연한 잎은 나물로 무쳐 먹는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있는 희귀종이다. 웬일인지 지금은 스무나무가 흔하지 않게 되었다. 개울 가습기 먹은곳에 잘 자란다는 스무나무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 풍요의 도시에 스무나무 고목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다면, 얼마나 청량하고 위풍당당하겠는가. 아내와 나는 스무나무를 찾아, 오늘도 동화처럼 스무숲 길을 걷는다. * 





최돈선 시인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 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 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