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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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4

2022.03
#봄내를 품다
특별기고
봉의산 온수골 샘물 활용방안 찾아야

봉의산 북서쪽 골짜기 


춘천은 샘물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좋은 샘물이나 우물이 많았다. 샘물과 관련된 지명도 곳곳에 남아있는데, 현재 행정지명으로 쓰이는 천전리泉田里(샘밭)를 비롯하여 모수물, 오수물, 한우물, 질우물, 샘골泉洞 등의 지명도 도로명이나 상가 이름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 좋은 샘물이라 불렸던 조건은 무엇 일까? 지금이라면 물의 성분을 분석해 유익한 영양소가 많으면 좋은 샘물이라 하겠지만 예전엔 불가능한 이야기다. 좋은 샘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량이 풍부해야 하고 겨울철에도 얼지 않아야 한다. 샘물이 쉽게 말라버리거나 겨울에 얼 경우 매번 얼음을 깨야 하는 고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샘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얼지 않았다고 한다. 


봉의산 자락, 양어장 있을 정도로 수량 풍부 

춘천의 많은 샘물 가운데 우선 봉의산에 있는 샘물을 살 펴본다. 사실 봉의산은 샘물과 관련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고려시대 몽고군이 춘천을 침입했을때 봉의산성에서 농성하던 거주민들이 식수가 바닥나 전원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봉의산 정상 부근엔 샘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봉의산 자락에는 다수의 샘물이 있었고 수량도 풍부했다. 한림대학교 부근에는 우사리, 몰개울이란 지명도 남아있거니와 일제강점기에는 양어장이 있을 정도 였다고 한다. 

봉의산 자락에 있던 대표적인 샘물로는 모수물과 한우물을 꼽을 수 있는데, 현재는 없어졌거나 그 흔적만 남아있다. 이에 비해 소양로1가 번개시장 쪽에 있는 샘물은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번개시장에서 소양정으로 올라가는 언덕 오른편 골짜기를 따라 조금만 가면 집이 한 채 보인다. 넓지막하게 닦아 놓은 터와 소양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방치된 비갓 등은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말해 준다. 현재는 무속인이 거주하는 공간인데, 집 안으로 들어가면 꽤 큰 바위가 있고 그 옆에서 샘물이 솟아난다. 바위는 신을 모시는 신당으로 사용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렵다. 그 덕분에 조선시대에 새겨놓은 글자가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은 채 잘 보존되어 있다.    


온수골 바위면에 새겨진 암각문  



소양정 인근 샘물과 암각문 그대로 보전돼   

글자의 판독을 통해 1900년 음력 7월, 당시 춘천군수 였던 권직상權直相과 행정관료, 교원, 경찰, 의원, 우체국 관료 등 16명이 이곳을 찾아 새겨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관아뿐만 아니라 소학교, 경무소, 의원, 우체국 등이 모두 군수의 관할하에 있었다. 16명의 이름 외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경치 좋은 골짜기’란 의미의 ‘온수동천(溫水洞天)’이란 글자가 상단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무속인이 신을 모시는 장소가 됐지만 예전에 이 곳은 관료나 양반 등 상류층이 찾아 유흥을 즐기던 곳이 었고, 샘물은 근처 주민들이 우물로 이용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김영하가 쓴 『수춘지』에는 봉의산에 온수정溫水亭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일 가능성이 높다.  



원수골 이름, ‘온수골’에서 와전된 듯   

골짜기의 이름도 ‘온수골’ 또는 ‘약수골’로 불렸다. 온수골은 말 그대로 따뜻한 샘물이 나오는 골짜기란 뜻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온수골’이란 지명이 ‘원수골’, ‘웬수골’로 와전된다. 이렇게 와전되는 것은 전국적으로 널리 확인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상한 지명으로 인해 새로운 전설이 다시 부여되는데, 원수를 갚았다거나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곳이라 원수처럼 여겨 쳐다보지도 않는 골짜기란 유래가 후대에 첨가되기도 한다. 이곳도 지역민들은 원수골로 더 많이 기억하고 있으며, 어떤 처녀가 이곳에서 자살했기에 붙여진 지명이란 설명과 실제로 자살 사건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따른다. 그런데 이는 우연의 일치 일 뿐이다. 원수골의 유래는 온수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라진 온수정 터 발굴을 기대하며    

봉의산을 오르다 보면 갈증을 해소해줄 샘물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땀을 식히며 시원한 샘물 한 모금 들이켜는 것이 등산의 소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봉의산 남쪽 방면 등산로에 샘물의 흔적이 몇 군데 남아있지만 현재는 모두 이용할 수 없다. 이곳 온수골 샘물은 도로에서 멀지 않기에 등산객이나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될 수 있을 뿐더러 바위에 새겨놓은 암각문도 조선시대 문화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제라도 샘물의 수질 검사와 체계적인 관리 및 암각문의 보존 방안 마련, 사라진 온수정 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봉의산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