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리 선돌과 당목
높은 산을 보라. 그것은 이미 하늘과 땅 사이에 있으면서 두 세계를 반씩 영위하고 있다.
그 위대한 모습은 사소한 인 간의 번민 따위는 한 입김으로 불어내던지는 느낌이 있다.
- 아그네스 고왈츠
신선들의 놀이터
산은 땅과 하늘 사이에 놓여 신성한 하늘 세계와 인간 이 사는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엄홍길 산악인은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 주는 것이다’ 라고 했다. 산은 소원을 비는 신령한 곳이고 이를 이루어 주는 신앙적 대상이기도 하다.
용화산에는 기괴한 바위가 유달리 많고 그 바위 이름은 신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백운대白雲臺 은선암隱仙巖현선암顯仙巖 하늘벽 한빛벽 바둑판바위 작은 비선대飛仙臺 등이 그것이다. 춘천을 감싸고 있는 대룡산 금병산 삼악 산 화악산 북배산 청평산 등을 헤아려 볼 수 있고, 파로호 춘천호 의암호 소양호 등의 춘천과 화천 권역 호수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한마디로 신선들의 놀이터라 불러도 무방하다.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일어섰다는 ‘선돌’
춘천의 산과 호수를 다 조망할 수 있는 신선들의 놀이터 용화산. 사진 곽방효
천혜의 요새 용화산성
춘천 북쪽에 하늘을 향해 바위 성채를 장엄하게 드러낸 산이 용화산이다. 용화산은 높이 877.8m로 춘천 사북면과 화천 간동면 하남면 경계에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고대 맥국의 중심지였다고 기록했다. 용화산은 산 정상부가 거대한 암벽과 기괴한 바위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다.
이에 산 일부에 축대를 쌓으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기에 이러한 천혜의 험준한 자연 지형을 이용해서 일찍이 맥국 사람들은 ‘산성’을 만들었으며, 이후 산성은 후삼국 시대 궁예에 의해서도 주요한 거점으로 이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용화산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려주는 실제가 ‘새남바위’ 다. ‘새남바위’는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이 첫 도읍지로 삼았다고 하는 중국 환인현 졸본성(오녀산성)의 바위벽을 떠올리게 한다. 새남바위는 ‘새가 날은 바위’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요새 남쪽 바위’로 풀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새남바위 바로 곁에 요새를 지휘하는 장군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춘천을 지키는 용
이 산에 살던 지네와 뱀이 용이 되려고 다투었고 뱀이 지네를 이기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로 인해 용화산龍化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용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삶 속에 깊이 깃들어 있는 상상 속 동물 이다. 특히 동양에서 용은 기린 봉황 거북 등과 함께 신령한 동물에 배속되고 신령하고 상서러워 인간에 도움을 주는 신성한 동물로 자리 잡고 있다. 용은 삼국시대에 불교와 연계되어 우리에게 전해져 백성과 국가를 보호하고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 잡는다.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화산 전설은 불교와 접목되어 호국신령으로 자리를 잡아 간다. 용화산에서 하늘로 오른 용은 지금까지도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올리면 비를 내려주는 신성을 과시하곤 하였다.
고성리 선돌
용화산 어귀 마을인 사북면 고성리 경계로 들어서면 야트막한 고개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선돌고개다. 고성리 방향 선돌고개 초입새 오른편으로 마을의 당산목인 소나무가 푸른 하늘을 담고 있다. 소나무는 철제 울타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뒤편에 4미터쯤 되는 돌이 서 있다. 이것이 바로 고성리 선돌이다. 이 돌은 신기하게도 누워 있다가 나라에 큰 변고가 일어나기에 앞서 벌떡 일어섰기 때문에 선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전에 지명 조사차 나갔다가 마을 어르신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6·25 전쟁에 앞서 며칠 전부터 선돌이 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마치 낙랑국의 낙랑공주와 자명고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필시 용화산에서 하늘로 올라간 용이 선돌을 통해 우리에게 어려울 때를 대비하라는 묵시적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용화산은 맥국 중심지 신북읍 북쪽에 있는 전략적 거점으로 선돌과 함께 춘천 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요새이며 신선의 놀이터가 될 만한 아름다운 자연유산이다
글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 소장. 일찍이 춘천학에 관심을 갖고 춘천의 역사와 문화에 집중해 왔다.
특히 천혜의 춘천 자연환경에 문화와 역사의 색을 입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