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천
현재의 나는 지금 우시장을 찾아가기로 한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은 흑백필름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나는 걷는다. 그리고 나는 걸으면서 과거의 나를 발견한다. 이제 옛날 우시장은 사라졌다. 정족리 저쪽 어디쯤에서 개천이 은실처럼 흘러내린다. 아직 얼음과 눈이 개천 가장 자리를 덮고 있다.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 꽃샘추위는 여전하다. 개천가 바로 옆에 오랜 막국수집을 발견한다. 신흥막국수란 간판을 건 메밀국숫집이다.
우선 나를 반기는 분은 주인이 아니다. 은행나무 가지에 서 까작까작 우는 까치와 식객 허영만이다. 이분은 2년 전 이곳을 방문했다. 막국숫집을 찾아온 기념으로 이분은 간판 사진을 남겨 주고 서울로 떠났다. 막국수는 면발이 뚝뚝 끊어졌다. 메밀향이 짙었다. 순메밀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불현듯 서면이나 남면 산비 알의 메밀밭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 메밀은 중국산이라고 메뉴에 적혀 있다. 토종 메밀이 사라진 춘천. 그 소금 같은 메밀꽃을 어디서 다시 만나볼 수 있으랴.
신흥막국수
과거의 나는 가을이면 메밀 꽃 향기에 늘 취해 살았다. 달빛 비친 메밀꽃밭은 한 편의 고요하고 순결한 시였다. 그 메밀밭을 지나 소장수들 은 춘천의 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소의 입을 벌려 치열을 검사하던 소장수들의 흥정을 과거의 나는 자주 보곤 했었다. 예전이라면 겨울이 끝났으니 배후령 너머 양구에서, 원창고개 너머 홍천에서, 자라섬 건너 가평에서, 춘천댐 지나 북쪽의 화천에서, 워낭소리 흔들며 여기저기에서 소장수들 이 몰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소장수들은 그들이 흥정해야 할 시장을 잃어버렸다. 소울음 소리는 그쳤고, 달빛을 밟고 오가던 소장수의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우시장 일대는 아파트 숲으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다. 우시장 터는 빈터만 남았고, 같이 있었던 도축장도 연 기처럼 사라졌다.
우시장 터 일부
그래도 퇴계천은 지금도 여전히 흐른다. 도심을 흐르는 냇물임에도 투명하도록 맑다. 천변 양쪽 길로 시민들이 걸어 다닌다. 운동시설도 보 이고, 붉게 시든 여뀌풀과 갈대들이 곳곳에 듬성듬성 솟아 있다. 한 떼의 청둥오리 떼가 푸르르 날아다니거나 수면을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이따금 부리를 물속으로 들이미는 놈은 분명 물고기를 사냥하는 중인 듯싶다. 봄볕이 환히 드는 바위 위엔 끼리끼리 잿빛 깃털을 말리는 놈들이 보인다. 분명 저 철새들은 북쪽 항해지도를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을 게 틀림없다. 따뜻한 오후. 냇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을 발견한다. 선 채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낚시꾼의 그림자가 길게 산책길에 누워 있다. 유리병 안엔 버들치가 가득하다. 일급수에만 산다는 물고기다.
그림 이형재
퇴계천과 아파트
퇴계천 예술기차 터널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 있고, 그 다리를 통해 이쪽 상가와 저쪽 아파트가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살얼음이 살짝 덮인 내를 지나면, 마침내 300m 길이의 긴 터널에 닿는다. 왼쪽 게시판엔 <춘천 가는 예술기차>라 쓰인 문구가 쓰여 있다. 터널 안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밖에선 어두워 보이던 터널 안이, 들어서니 의외로 어둡지 않다. 옛날 기차가 굴뚝에서 석탄 연기를 내뿜고 달린다. 칙칙 폭폭, 뚜우!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300m의 긴 터널 여행은 자못 흥미롭다. 객차에서 내다보는 경춘길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아래쪽엔 하얀 조팝나무가 만발하고, 위쪽으론 노란 개나리꽃이 치렁치렁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나비를 잡기 위해 깡충깡충 뛰고 있다. 소양호 그림, 코미디언 이주일, 가수 이남이, 시민 가족 의 얼굴, 춘천의 야경, 시인의 시구절, 오리가 객차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 등, 줄줄이 이어진 긴 열차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터널 끝에 다다르면 옛날 기차가 현대식 열차로 바뀌어 달린다.
이 터널 산책로 미술관은 2021년 1월부터 5월 말까지 5개월이 걸려 완성되었다. 춘천예술인 37명이 참여했다. 터널 미술관은 건너편 석사동 후하천 다리 밑에도 있는 데, 그곳엔 옛날 인기 영화 포스터가 즐비하게 그려져 있다. 퇴계천은 공지내와 T자형으로 만난다. 산책하는 시민들은 터널 미술관을 빠져나와 공지내 산책로로 접어든다. 위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대룡산 기슭에 닿게 되고, 아래 쪽으로 방향을 틀면 공지천 호수에 닿아, 아름드리나무 메타세쿼이아 공원 벤치에 앉게 된다. 산책하는 시민들은 상류와 하류를 걸으면서 내와 호수 와 도심지의 인근 숲을 만난다. 가장 쾌적한 공간의 누림은 시민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춘천은 지금 엄청난 아파트군이 형성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아파트, 아파트뿐이다. 높은 건물의 그늘로 시민의 시름이 잠긴다. 빌딩 숲이 산을 가리고 고층빌딩의 난립으로 도시환경은 나빠지고 있다.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대룡산이 보이는 공지내
거대한 인공숲 아파트.
아파트 사이사이로 바람과 빛과 사람과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아파트는 골목을 만들고, 골목은 몇 동 몇 호의 이름으로 자동차와 사람들을 맞이한다. 밤이면 네모난 창에서 어화漁火처럼 수천 개의 빛이 발화 하기 시작한다. 온갖 별들이 촘촘히 박힌 아파트촌은 반짝 이는 은하의 숲을 이룬다. 이 아파트 숲은 예전엔 소나무가 자라는 동산이었다. 일고여덟 채의 민가가 납작이 엎드려 있던 곳이었다. 과거의 나는 석사동에서 공지내를 건너 친구집을 찾아 간 적이 있다. 친구가 있는 초가는 여름날 옥수수밭 저쪽 산비알에 있었다. 키 큰 옥수수밭 사잇길은 옥수수가 이룬 골목길이었다. 수염 달린 옥수수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 큰 이파리들이 내 팔뚝을 간지럽혔다. 그 길은 먼 길 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래오래 걸었던 모양이다. 친구는 없었다. 나는 친구의 빈방 문지방에 걸터앉아 오래오래 초록 옥수수밭을 건너다보았다. 구름은 느리게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이제 그 옥수수 길도, 친구도(그는 죽었다), 친구의 집도, 마당도 사라지고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옥수수가 자꾸 자라 듯이 아주 거대한 아파트들이 다투어 자랐다. ‘옛’은 가고, 현재는 또 시들었다. 건물도 색이 바래져 또다시 ‘옛’이 되 어 갔다. 옛사람들 뒤이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구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세웠다. 새로운 골목은 아이들을 키워 어른이 되게 했다. 도시의 변화는 언제나 역동적이지만, 가난과 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퇴계천 가까이 안마산 기슭엔 스무숲성당이 들어섰다. 안마산은 말 안장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도들은 성경책을 들고 성호를 그으며 새벽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어느 소나무 숲인가, 아니면 어느 참나무 숲인가. 오색딱따구리가 부지런히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린다. 딱! 딱! 딱! 딱! 안마산 오솔길은 그리 높지 않아서 산책하기에 아주 적 당하다. 정상에 서면 춘천 도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멀리 봉의산이 나란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제발 이젠 더 이상 나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벨탑처럼 너무 높아. 하늘엔 뾰족뾰족한 아파트들이 숨이 막힐 듯 너무나도 눈부시다.
최돈선 시인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 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 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