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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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3

2021.4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 ⑯
전설의 골목 효자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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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우라는 화가가 있단다. 그는 말과 젖소, 기린을 합친 신성한 동물을 즐겨 그리지.

동물의 머리엔 신기한 나무가 자라고, 동물은 그 나무를 사슴뿔처럼 이고 다닌단다.

그 나무에선 복사꽃이 탐스럽게 피어나지.

그 동물이 지나는 길엔 은은한 향내가 퍼지는데, 그 향내를 맡은 모든 것들은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는구나.


사람도, 동물도요?

그러엄.

나무도, 돌도요?

생명체는 물론이고 무생물도 그렇다는구나.

전설 같은 이야기예요, 아빠.

그래 전설이지.

넌 무릉도원 이야기를 알고 있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이상향 말이지요?

그래, 서양에선 그걸 유토피아라고 하더라.

그리스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라던데요?

그렇지. 하지만 사람들은 꿈을 꾸면 그 무릉도원이 나타난다고 믿고 있어.

임근우 화가도 그런 소망으로 그림을 그리는군요.

응, 황신혜란 여배우는 임근우 화가의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매일매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아….

아빠. 저도 전설 하나를 알고 있어요.

응?

제가 강원대학교 다닐 때예요. 전 전설에서 술을 몇 번 마신 적이 있어요.

전설에서 말이냐?

네. 길 옆에 있는 술집이에요. 간판은 없지만, 학생들은 그 술집을 ‘전설’이라 불렀어요. 고갈비가 참 맛있었지요.

찾을 수 있겠니?

모르겠어요. 워낙 오래전 일이라….


우리는 골목을 들어섰다.

‘솔’의 말로는 2, 3차 후 마지막 들른 그 집은 늘 아롱아롱했다고 한다.

효자동은 1, 2, 3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효자2동에 전설이란 술집이 있었다고 한다.

효자2동은 낙타등처럼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강원대학교가 바로 옆이어서 춘천에서 대학생들의 원룸이 가장 번성한 곳이다.

그러나 개학이 되었음에도 골목길은 한산하다 못해 정적마저 감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 학생들이 없는 거리, 학생들이 없는 빈방. 작은 공원엔 마스크 쓴 노인들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

한 노인만이 운동기구에 앉아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그늘이 길게 한적한 슈퍼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원룸촌은 텅 빈 채 집집의 문마다 ‘원룸임대’라 쓴 종이나 네모난 플랜카드가 풀 죽은 모습으로 붙어 있다.

아마도 짐작하건대 수천 호가 넘을 이 거대한 원룸촌이 이렇게 괴괴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한때 이곳은 낭만의 골목이었을 것이고, 젊은이들의 활기찬 낙원이었을 것이다.

도화길과 둥지길이 잇닿아 있는 이곳은 복숭아꽃이 만발했던 언덕이었다.

봄이면 화사한 복사꽃길을 조금 오르면 둥지를 튼 판잣집을 만날 수 있었다. 가난했으나 사람들은 이곳을 무릉도원이라 불렀다.

춘천농대가 국립강원대학교로 바뀌면서 이 무릉도원의 언덕은 복사꽃이 사라지고 올망졸망 하숙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간 대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종종 신문이나 방송을 타기도 했다.

8, 90년대만 해도 연탄으로 방을 덥혔는데, 갈라진 구들장이나 벽 틈새로 연탄가스가 스며들어 사람들을 중독시키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탄가스를 ‘침묵의 저승사자’라 불렀다.


솔이 말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도 참 오랜 세월이 흘렀겠지.



그 전설의 술집을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어요. 전 진정한 술꾼이 되긴 글렀나 봐요.

다행이구나.

근데요. 제가 가본 전설은 제2의 ‘전설’ 집이래요.

그럼, 원조 전설 집이 있단 말이냐?

네. 그 전설의 집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대요.

뭐라고?

고양이 때문에요. 그 집엔 늙은 고양이가 살았는데, 그 고양이가 지붕을 몽땅 뜯어먹어 버렸대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구나. 그래서?

무너져 버렸죠, 뭐.

폭삭?

네, 폭삭!

그게 ‘제2의 전설’ 주막의 전설로서 이야기되곤 했어요.


우리는 고양이를 만났다.

가파른 나무계단에서였다.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계단 난간에 올라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살이 너무 눈부신 때문일까.

오래된 그 고양이는 신비로웠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그 고양이는 빛처럼 사라졌다.

오동나무공원에 닿았다. 가파른 언덕길 중간쯤에 공원이 있었다. 그러나 오동나무공원엔 오동나무가 없었다.

대신 고양이 세 마리가 철제 구조물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가 새끼들을 거느리고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일까.



공원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설명해주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는 연년생이라 했다.

맨 끝의 고양이가 올해 태어난 고양이로 며칠 전에 다리를 다쳐 잘 걷지를 못한다고.

사료 그릇과 물그릇이 소나무 그늘 아래 놓여 있었다. 그중 덩치 큰 녀석이 훌쩍 뛰어내려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사료 값이 만만치 않아요. 시에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고양이엄마라 부르는 건너편 미용실 주인이 다친 후로 자신이 혼자 돌보는 중이라 했다.

우리는 그 자리를 떴다.

아까 나무계단에서 본 흰 고양이 보았니?

네, 봤어요.

그 고양이가 이 무릉도원의 전설이 아닐까?

그럴까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솔은 무심코 어느 식당 문을 열고 나온 한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 전설의 술집을 아시나요?

그러자 선뜻 그 남자가 말했다.

알고말고요. 2년 전에 큰길 건너편으로 갔어요. 그리 가보세요.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상호가 여전히 전설인가요?

그건 모르겠는데, 어쨌든 저 큰길 건너 쭈욱 가면….

그리고 얼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큰길은 요단강 같았다. 정말 그 전설의 술집이 있을지는 가보아야 아는 일이다.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귀에 쟁쟁했다.

굉장히 많이 늙었을 걸요? 그 주인 양반!

어디선가 또 하나의 집이 폭삭, 무너지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