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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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3

2022.02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 26
소양로1가 93번지엔 번개시장이 있었네

그림 이형재




- 빛바랜 사진 저쪽

새벽 3시. 

어두운 골목길에 하나둘 반딧불이 같은 등이 켜지기 시작한다.이쪽 골목과 저쪽 골목이 서로서로 교차하여 환한 불빛의 띠를 이룬다.서면 오미나루에서 나룻배나 통통배에 가득 농산물을 싣고 온 아낙네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난전을 벌인다.긴 줄이 생기고 손님들이 몰려온다.새벽 공기는 유난히 차고 맑다. 장사꾼 대부분은 농민이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봉의산 기슭엔 이른 새벽 부터 두런두런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로부터 동이 트고 아침 9시가 되면 장은 파장한다.

이것이 6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번개처럼 생겨났다 파장되는 시장이라 하여 번개시장이라 했다. 도깨비불처럼 불빛이 반짝였다가 아침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이라 하여 도깨비시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농부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은 싱싱하고 값이 쌌다. 그래서 동이 틀 무렵, 서면 농산물은 다른 지역에서 온 농산물 보다 일찍 동이 났다. 농산물을 처분한 서면 사람들은 통통 배를 타고 서면으로 건너갔다. 그 통통배를 타고 한 떼의 학생들이 시내로 건너왔다. 서면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았다. 서면엔 박사들이 지금 까지 180여 명이 배출되었다. 서면은 전국 3대 박사마을 중 하나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승수 박사는 서면 박사 3호 였다. 그는 다른 학생들처럼 아침이면 통통배를 타고 춘천고로 등교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다시 통통배를 타고 신매리 배터로 건너갔다. 그는 오가면서 얇은 영어단어 한 장을 몽땅 외웠다. 그리고 외운 종이 한 장을 뜯어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그 일화는 학생들의 입으로 회자膾炙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그때부터 ‘사전껌’을 씹는 학생을 가리켜 공부의 신이라 불렀다.




번개시장 사거리




- 봉의산 기슭

봉의산은 춘천을 위무하는 진산이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이 산 중턱쯤의 소양정에서 들녘을 멀리 내다보면, 긴 대바지강이 보인다 했다. 하지만 지금 그 강은 의암댐으로 하여 호수가 되었다. 멀리 서면 박사마을의 비옥한 논과 밭이 질펀히 펼쳐져 보인다. 봉의산은 오래된 내력의 절인 충원사를 가슴에 품는다. 그 아래쪽 석왕사가 있고, 기슭엔 크고 작은 절들이 산재해 있다. 소양로성당과 봉현선원이 아래위로 자리한 곳엔 한없이 아늑하고 정겨운 햇살이 비친다. 하얀 상아빛 건물인 소양로성당은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 성당을 떠올린다. 그 소양로성당에서 거룩한 성가가 울리면, 보현선원 처마의 풍경 소리가 조용히 황혼에 젖는다.




(위)파란지붕의 박희선 조각가의 집과 작업실




- 불꽃의 삶을 살다 간 조각가

박희선 조각가는 1997년 마흔 살에 타계했다. 그는 김 종영 미술상을 받은, 전도유망한 젊은 조각가였다. 그의 작업실은 지금도 번개시장 길 옆에 있다. 그곳이 그의 집이었다. 그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배우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길진 님이 열어준 작업실 안으로 나는 들어섰다. 박희선 조각가가 작고한 지 25년이 되었지만, 작업실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박희선 조각가가 타계하기 몇 달 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가 2월이었다. 당시엔 창문으로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자귀와 끌 자국이 난 나무가 서 있고, 바닥엔 나무 부스러기들이 널려 있었다. 

가을에 전시 예정인데 그는 내게 도록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자욱이 스며들어오는 햇살 터널로 뽀얗게 나무먼지가 일었다.


황효창의 번개시장


- 화가가 그린 번개시장

번개시장을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장사꾼이든, 손님이든, 가난한 예술가이든, 번개시장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는 번개시장의 한 부분이 된다. 떠돌이와 떠 돌이가, 떠돌이와 토착민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의 어깨를 부딪는다. 

나는 번개시장 뒷골목 허름한 주점을 종종 들르곤 했다.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와 함께였다. 우리는 들기름으로 노릇노릇 지진 두부구이에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능한 조각가가 자동차에서 연탄가스를 마 시고 자살한 이야기를 할 때는 우울하게 술을 마셨다.

하지만 누가 문학상이나 미술상을 받아 한턱 술을 내면 아주 유쾌하게 마셨다.

그리고 시장길 끝에 있는 카페 ‘봉의산 가는 길’로 우르 르 몰려갔다. 양주를 좋아하는 황효창 화가는 술이 세기로 유명했다.그가 그린 번개시장은 활기가 넘치는 대작이었 다. 그 그림 속에다 자신의 모습을 슬쩍 끼워 넣고선, ‘어디 한번 찾아봐’ 하고 웃었다.

서면에 작업실이 있는 신대엽 화가는 봉의산 기슭의 번개시장을 둘러보고 스케치를 해 왔다. 그는 말수가 적은 조용한 성품의 화가인데, 그는 늘 조용히 차를 마시고 조용히 말하곤 했다. 봉의산 가는 길엔 황효창 화가의 그림도 걸려 있고, 신대엽 화가가 그린 봉의산 기슭의 풍속화도 걸려 있다.

봉의산 가는 길은 예술인들의 사랑방이다. 사람 좋은 주 인은 그런 예술가들을 좋아한다. 화가들의 그림도 기꺼이 구입하여 카페에 걸어놓는다.


신대엽 화가의 타일 벽화와 장선화 작가의 예인공방 외부


2000년, 쓸쓸해진 번개시장 풍경 

그토록 붐비던 번개시장은 2000년대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서면의 농부들은 더 이상 번개시장으로 오기 위해 배를 타지 않았다. 그들이 소출한 농산물은 현지에서 중간업자가 모두 가져갔다. 배를 타고 농산물을 지고 올 필요가 없어 졌다. 그때의 억척스런 농부나 아낙들은 노인이 되었다. 통통배를 타고 등하교를 하던 농부의 자식들은 성장하여 박사가 되거나 큰 인물이 되었다. 

새벽시장은 애막골로 옮겨가 난장을 이루었다. 거대한 아파트군이 조성된 애막골은 토, 일요일 새벽이면 인산인해였다. 

그에 비해 번개시장은 서서히 퇴색되어 갔다.



색채의 마을, 휘황한 야시장의 꿈  

거리는 2015년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보였다. 번개시장은 춘천 제1호 도시재생지역이 되었다. 낡은 집이 허물어지고, 예쁜 색채의, 동화 같은 집들이 들어섰다. 골목길은 넓어졌다. 들기름 두르고 지지는 두부가 그리웠으나, 그집 골목은 사라져버렸다. 시장 뒤편엔 휑뎅그렁한 공터가 을씨년스러웠다. 아직 철거하지 않은 가게가 공터 가장자리 로 삐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은 새로운 생과자점과 음식점이 한가하게 손님을 맞았다. 큰길가 어느 집 벽면엔 신대엽 화가의 ‘봉의산도’ 그림이 타일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예인공방이라 쓴 집 벽엔 도자기 작품과 공방주인의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장선화 도예작가였다. 뒤란 공방엔 서너 분이 흙을 빚으며 우리를 따뜻이 맞이 했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강생들은 손으로 흙을 빚고 가마에다 빚은 흙을 구웠다. 절간 같은 공방 사면엔 도자기 작품이 수백 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작품들이 하나같이 따스해 보였다. 흙이 생기를 지닌 듯했다. 

도자기 종들이 댕그랑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을까. 

예인공방을 나서자 어느덧 황혼이 번개시장 건물들과 거리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이 번개시장은 새벽시장에서 야시장으로 바뀌었다. 

이곳 야시장엔 들기름 두른 두부에 막걸리를 파는 주점이, 옛 이야기책을 펼치듯 다시 문을 열 것이 틀림없었다.









최돈선 시인.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춘천의 골목엔 어떤 이 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것이 궁금한 시인은 골목순례를 결심했다. 

골목은 춘천시민의 가장 깊은 내면 이며 참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