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평창군청 광장에서 월드컵 응원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에어로빅·자전거로 체력 다졌다
고미정(55) 씨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이르는 ‘부지런’과
‘바지런’은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녀 특유의 친화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두레생협 조합원인 아내와 함께 퇴계동 매장으로 장을 보러 다니면서
매장지기인 그녀와 자연스럽게 만났다. 매장으로 들어설 때마다 들려오는
“어서오세요 ~ ”하는 반 옥타브 높은 그녀의 목소리엔 늘 에너지가 넘친다.
“처음엔 그저 아르바이트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생협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죠.
생산자와 소비자를 건강한 먹을거리로 이어준다는 게 참 좋았어요. 이제는
제 가게로 출근하는 기분이에요.”
부지런한 건 타고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대학을 졸업할 무렵 불어난 체중을 관리하라는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무용학원에 등록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에어로빅의
세계에 빠져든 오래전 얘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무용에 소질이 있었나 봐요. 근데, 무용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란 걸
원장님도 알고 저도 알았어요. 그때 권유받은게 에어로빅이었죠.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어요.”
단거리선수로 아시아를 주름잡았던 큰 키의 장재근 선 수가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팔다리를 흔들며 점프를 하 던, 에어로빅이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단골로
나오던 때였다. 살을 빼려고 시작했지만 고향인 강릉에서 서울을 오가며 전문 강사
자격증을 따게 된 것도, 진부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던 친구로부터 여성회원들에게
에어로빅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간 것도, 거기서 지 금의 남편을
만난 것까지,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하창수의 사람이야기 1 슈퍼우먼 미정씨
삶이 이루어낸 과정이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남편의 전근으로 삶터를 평창으로 옮기고
첫 아이를 낳은 뒤에도 진부를 오갔다. 둘째가 태어나서야 주부로 돌아왔지만,
특유의 바지런은 여전했다.
“한번은 장에 갔다 오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막 화를 내는 거예요. 그곳
사람들에게 택시는 장거리 갈 때나 타 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자전거를 샀죠. 큰애는
앞쪽 안장에 다 태우고 작은 애는 업고 장을 보러 다녔어요.”
큰아이가 일곱 살, 둘째가 네 살 때 고미정 씨는 에어로빅을 다시 시작하게 되고 이후
6년이나 이어진다. 매일 다섯 번의 기본 강좌에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운동회와 연말
학예발표회때 시범, 보건소 건강프로그램과 군청에서 하던 새벽반까지, 거기에 동계올림픽
유치기념 같은 굵직굵직한 행사장엔 어김없이 그녀가 나타나 활기차게 뛰었다.
그녀가 평창의 ‘셀럽’이 된 건 당연했다.
슈퍼우먼 미정 씨. 사진 명예시민사진기자 이원일
따뜻한 슈퍼우먼
고미정 씨가 춘천시민으로 살게 된 것은 남편이 고향인 춘천으로 전근을 한 15년 전.
마침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 한 때라 오랜만에 그녀는 학부모 모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학부모로만 조붓하게 지낼 그녀가 아니었다.
큰아이가 다니던 여중에서 스쿨폴리스로 교내 순찰을 돌았고,
3년 동안은 춘천의 고등학교를 돌며 자원봉사자로
학생들 진로상담을 맡았다. 에어로빅을 오래했는데 계속할 생각은 없었냐고 물었더니
“춘천으로 이사 왔을 땐 에어로빅이 저물고 K팝 댄스가 유행하던 시기였어요.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해서 일반회원으로 등록해서 다녔죠. 재밌더라고요.”
참 그녀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의 부지런함은 어디까지일까. 무엇이든 배우는 걸 좋아해 평생교육원에 다니면서
일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미용기술도 익혀 시립요양원으로 봉사를 다니기도 했다.
성당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줄 땐 ‘장금이’란 별명을 가진 친정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솜씨를 발휘해 아직도 그녀의 떡볶이 맛을 얘기하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아파트에선 8년째 통장 일도 맡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슈퍼우먼’ 고미정 씨의 바람을 물었다. 36년을 근속하고 퇴직한
남편과 나름 앞가림하는 아이들에겐 특별히 바라는게 없단다.
그러다가 바람보다는 걱정 하나를 꺼냈다.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노인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집이 있어서 생활보호 대상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들이 자주 찾는 것도 아닌 분들요. 통장으로 마스크를 전달해 드릴 때마다,
이분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나, 걱정이 많이 돼요.”
얼마 전 전북 익산의 한 아파트에서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문이
고장나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수돗물을 마시며 보름을 버티다 구조된 독거노인
얘기가 스쳤다. 외롭게 홀로 사는 노인들의 돌봄을 걱정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
또한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 삶의 일부란 생각 이 들었다.
퇴행성관절염이 시작된 불거진 그녀의 손마디들도, 생각해보면 열심히 살아온 증거물이다.
약해 보일 정도로 말랐지만 매장지기로서 더없이 든든한 그녀의 건투를 빈다.
하창수
소설가이며 번역가. 춘천으로 이사 온 지 30년, ‘경상도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괜히 섭섭해지는 춘천사람이다. ‘사람 이야기’는 춘천에 살면서
그 가 알게 된 사람, 그 누군가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