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년간 휴간에 들어간 녹색평론과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
‘녹색’은 언제부터인가 생태주의적 세계관이나 친환경적 가치관의 함축이나
지향을 뜻 하는 말로 확장되어서 널리 다 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새해부터 춘천
시민들과 만나게 된 이 특별한 기획의 제목에서 내건 ‘녹색’이라는 말도 그 범주에 있다.
나뭇잎을 녹색으로 물 들이는 것은 태양과 나무의 합작이지만, 내가 펼치는
‘녹색 이 야기’는 결국 사람살이 이야기 일 수밖에 없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소리도 있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조금 과장된
자화자찬도 있지만, 나는 사람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로 정의하고 싶다.
‘녹색’을 내걸고 우리 사회에 진지한 생태담론을 펼친 잡지가 있었다. 『녹색평론』
이다. 30여년간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했던 발행인 김종철은 재작년 6월 아침
산보길에 실족사해서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그는 책 읽고 공부한 한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지금 이대로의 삶의 진행으로는 결코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을 참 오랜 시간 성실하게 지속적으로 역설했다.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것은 중요하고 오래된 질문이지만 한 가지 답만
내놓을 수 없는 난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이 이 행성의 주인공이라는 전제에서
오로 지 성장에 중독된 상태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이르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나라는 수치와 통계에 의해 혹은 삐까번쩍한 외형에 의해 부유해졌다고 착각할지 모르나
정작 그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들은 행복하기커녕 더 궁핍해 지고 비참해지는 사태를
우리는 매일같이 목도하고 체감하고 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잘은 모르지만,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종철의 생각은 “끝없는 성장, 팽창을 내재적인 요건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산업경제,
산업문화가 물러나고, 새로운 차원의 농업 중심 사회가 재건되는 것만이 생태적,
사회적 위기와 모순을 벗어나는 유일하게 건강한 길”이라고 요약 할 수 있다.
그는 공존공영共存共榮이 아니라 공빈공락共嬪 共樂이야말로 궁극적인 목표이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봤다.
고르게 가난하자’는 그의 사상과 나는 몇 차례 충돌한 적이 있다. 그 말은 대안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지금 이미 충분히 궁핍한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지라 그
진의 와 상관없이 가난한 이들을 모욕하는 말로 전달될 수도 있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진 연합뉴스
더글러스 러미스라는 평화운동가가 있다. 그를 한 번 만 난 적도 있는 나는
그로 인해 받은 세계관의 변화를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발전’이라는 말의 일방적 왜곡에 대해 알려주었다. 1948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온 세상의 나라들을 ‘발전 시키겠다’는 국가정책을 세우고 강행하기
전까지 ‘발전’이라는 말은 자동사로만 쓰였다. 2차대전 이후 갑자기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온 세상의 나라들을 ‘선진국, 중진국, 개발도상국’으로 나누었다.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 나라들의 지상목표는 ‘중진국’이고, ‘중진국’은 오로지
‘선진국’ 진입이 꿈이었다. 경제적 풍요가 그 지표였다. 신생독립국 대한민국도
트루먼의 구분에 순종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근 년에 이르러 ‘우리도 선진국에
들어왔다’고 인정받고, 으스대기 시작하고 있다.
이 얼마나 거친 분류법인가? 본시 선진국, 후진국 그런 것은 없다. 각기 ‘다른 나라들’이
있을 뿐이다. 트르먼의 기획은 성공했을까. 나라는 부유해졌으나 국민 대다수가
풍족해진 것은 아니었다. 없던 차를 끌고, 고속도로가 신설되고, 수출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우리가 행복해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세계 상위 10%가 전체 자산
76%를 차지하고 있다’는 <2021년 세계불평등보고서>만 봐도 트루먼의 기획은
틀렸다는 게 판명된 셈이다.
사진 연합뉴스
행복과 경제성장은 매우 밀접한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은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릇된 세계관으로 자연이 자원으로 간주되었고, 그 과도한 남용의 폐해는
인간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양의 쓰레기화, 산천파괴, 동식물의
멸종, 전염병의 창궐, 기후변화 등의 생태적파국상황이 모두 잘못된 생각,
그릇된 국가목표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일들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지, 부자가 되고,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고, 지구환경을
못 살게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가 성장시켜야 할 것은 살아 있다는 기쁨이고,
인간의 품위고, 타인과의 나눔이고,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여야 할 것이다.
김종철이 생전에 말했다.
“내가 목소리를 낮추어야 딴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고, 사람이 조용해져야
새들이 노래를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최성각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작가’로 불린다. 새나 돌멩이 등 비인간에게 참회를 표하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벌였다. 건양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요산문학상,
교보환경문화상을 받았다. 3만 여권의 책더미가 있는 툇골에 파묻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