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호수에서 본 고산
코로나로 더없이 다사다난했던 2021년.
‘되돌아봄’에 대해 생각하며 일상에서 힘들고 지친 심신이 쉴 수 있는 고산을 소개한다.
부래산과 춘천 사람의 지혜
상중도 가장 위쪽에 솟아 있는 해발 99m의 나지막한 봉우리는
고산孤山, 부래산浮來山, 봉추대鳳雛臺, 고산대孤山臺 등 이름이 네 개다.
이 가운데 고산이 대표 이름이다.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고산이 어디인지 아느냐 물어보면 세 분 중 한 분은 알고 있다고 답한다.
또 고산에 얽힌 부래산浮來山 전설을 기억하는 분도 많다.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금성 고을에서 고산이 떠내려와 해마다
금성 고을 관리가 세금을 받아 갔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했는데 고을의 아이가 세금 걷는 금성 관리에게
떠내려온 산을 도로 가져가거나 이 산이 깔고 앉은 땅이 춘천 땅이니 오히려
자릿세를 내라고 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다.
부래산 전설은 권력을 이용해 일반 백성을 탐학한 부패 관리를 비판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선 백성의 지혜가 담겨 있다.
봉추대와 봉의산, 봉황대
우리 춘천에는 봉황과 연관된 지명과 건물명이 많다.
진산인 봉의산과 강남동 봉황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산의 다른 이름인 봉추대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봉추대는 봉황의 새끼를 가리키는 말로 봉황대보다 그 크기가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의산과 봉황대 그리고 봉추대를 선으로 연결하면 소양강을 그 중심에 두고 이어진다.
봉황은 태평성대와 평화를 상징하는 전설 속의 불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명 속에서 우리 선조가 얼마나 태평성대를 갈망하고
평화를 추구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산과 고산대 : 아름다운 해넘이 풍경
고산은 상중도 끝나는 지점에 홀로 우뚝하게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 고산에 올라보면 고산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
가깝게는 봉의산과 소양정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빙 두른 산들이 병풍처럼
고산을 감싸준다. 옛 문헌에는 이곳에 올라서면 십여 명이 앉을 수 있고 30리에
걸쳐 들녘이 둘러싸고 있으며, 소양강, 자양강(일명 장양강),
문암, 우두산, 봉의산, 봉황대, 백로주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산에 펼쳐지는 저녁놀은 춘천을 대표하는 환상적인 자연풍광의 하나이다.
소양 8경 중에 단연 돋보이는 풍광으로
조선 시대 매월당 김시습도 고산 관련 시를 두 편이나 남겼다.
매월당은 해넘이에 고산에 올라 주변 풍광에 빠져 홀로 배회하다 돌아가야 하는 것도 잊었다.
출옹 이주는 매월당을 뒤이어 고산에 올라 해넘이 풍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고산과 소양강, 자양강 사진 국립중앙박물관(1919년)
고산과 해넘이
고산 꼭대기에 한 번 올라서서 / 빙 둘러보니 혼자만이 아니어라
산들은 비단 병풍처럼 둘러싸고 / 거울 같은 두 강물을 끼고 있네
성긴 빗방울은 내리다 그쳤다가 / 해 기울어 반쯤 산 넘어서 가네
겨드랑이에 저절로 날개 돋으니 /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이주 李胄(1468~1504) ‘고산대
고산에 올라보면 둘러친 산들이 병풍 울타리가 되어주고
거울처럼 맑은 소양강과 자양강이 곁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땅거미가 찾아들고 해가 넘어갈 때면 자신도 모르게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니
예전 모습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무한 자연 풍경 앞에 드러난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는 동시에
티끌 세상에서 벗어나 소요유逍遙遊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이 실현되는 공간이 바로 고산이다.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고산에 올라 해넘이 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면 어떻겠는가!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 소장.
일찍이 춘천학에 관심을 갖고 춘천의 역사와 문화에 집중해 왔다.
특히 천혜의 춘천 자연환경에 문화와 역사의 색을 입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