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식이와 아빠가 어린이식당에서 먹을 음식을 접시에 덜고 있다.
11월 5일, 아빠 손을 잡고 ‘어린이 식당’에 들어온 아홉 살 현식이.
자리를 잡은 후 화장실에 가서 손을 닦고 왔다. 아빠와 함께 음식을 접시에 담고 자리에 앉은 뒤 식사 시작.
이날 메뉴는 기장밥과 미역국, 마파두부, 닭봉간장조림, 감자튀김, 김치와 김이었다.
현식이는 마파두부가 맛있다며 밥과 두부를 더 달래서 두 그릇 가까이 먹었다.
이날이 두 번째 방문인데, 다음번에 또 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10·11월 두 달간 실험적 운영
거두리에 위치한 쿱박스가 10~11월 두 달간 어린이식당으로 변신했다.
어린이식당은 2021 춘천소셜리빙랩 사업의 일환으로 먹거리평등정의실천연대(이하 먹거리연대)가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건강한 저녁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실험적인 공간이다.
먹거리연대는 결식아동뿐 아니라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많아 외식이 잦고, 코로나19로
배달 또한 일상이 된 시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한 끼에 주목했다.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이 높은 외식 메뉴나 배달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준 것 같은 건강하고
맛있는 저녁 한 끼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것. ‘가족식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들 인원에는
제한을 두지 않지만, 보호자는 한 명으로 한정했다.
건강한 식재료로 건강하게 조리
10월은 목 · 금 주 2회, 11월에는 수 · 목 · 금 주 3회 운영했다. 한 끼 식사비는 3,000원으로 정했다.
무료로 하고 취약계층만 오도록 하면 ‘낙인효과’가 생겨 오히려 취약계층 아동이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식당이 문을 연 후 아이들끼리 오기도 하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오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어른과 함께 오다가, 나중에는 아이들끼리만 오는 일도 많아졌다고.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딸을 데리고 어린이식당을 찾은 박미정씨는 “조미료 맛이 안 나고 집밥처럼 슴슴해서 좋아요.
요즘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 먹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음식을 만들려고 장을 보면 남는 재료가 많아 처치 곤란인데,
여기에 오면 건강한 재료로 건강하게 조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아요”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이들·부모가 원하는 메뉴 조합
어린이식당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와 엄마가 주고 싶은 메뉴를 잘 조합했다.
두부달걀무침, 닭볶음탕, 함박스테이크, 로제떡볶이, 등뼈감자탕 등 주메뉴와 함께 시금치,
무나물, 부추무침 등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메뉴를 짰다.
식자재는 두레생협을 통해 유기농, 친환경 재료만 사용했다.
“첨가물이 없는 친환경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춘천에서 생산되는 로컬푸드와 연계해야 해요.”
김선옥 먹거리연대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규모가 작아 시도하지 못했지만,
먹거리통합지원센터와 연계해 춘천의 건강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바로 제공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어린이식당에 대한 분명한 비전도 제시했다. 이번에는 리빙랩 사업을 통해 두 달간 실험적으로 운영됐지만,
아이들의 건강한 한 끼를 위해서라면 상설적으로 매일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먹거리연대는 앞으로 나가야 할 길만 제시한 것이라고.
어린이식당, 상시 운영될 날을 기다리며…
“우선 전문적으로 식당을 운영할 사업자가 필요하죠.
하지만 아이들만 대상으로 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공유주방을 활용,
낮에는 어른을 대상으로 하고 저녁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겠죠.
또 춘천지역 로컬푸드 매장과 직거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도 필요하고요.
나가야 할 길이 멀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워킹맘으로서 아이 둘을 키울 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퇴근 후 헐레벌떡 음식을 하거나 시켜주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본인도 힘들었던 과거가 늘 맘에 남아있었다고한다.
아이들에겐 따뜻한 먹거리를 주고, 부모도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어린이식당이 상시 운영될 날을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한편 2021 춘천소셜리빙랩에서는 어린이식당 이외에도 이동도서관 운영, 자전거 전용도로 모의실험,
발달 장애인의 쉬운 소통을 위한 시제품 제작, 미혼모 자립과 마음 회복을 돕는 커뮤니티 운영,
느린학습자의 진로탐색을 돕는 실험 등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오고 있다.
어린이식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배식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