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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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0

2021.11
#봄내를 꿈꾸다
우리마을 별별공동체 ⑱
‘노는 언니들’
도자기 빚으며 신나게 논다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

누구나 바라는 노년의 모습이다. 서면 점말촌에 가면 어린 시절 소꿉놀이 하듯 오순도순 즐겁게 사는 이들이 있다.

박사마을 마을공동체 ‘노는 언니들’이다. 순진무구한 모습에 유년인지 노년인지 가늠하기 힘든 그녀들을 만났다.


서면 박사로에 있는 점말촌은 도예마을, 매화마을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봄이면 매화축제가 열리고 사계절 도자기 굽는 풍경이 아름다웠던 곳이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부부가 모두 도예작가인 박영진·전채윤 씨다.

박영진 씨는 금산리 이장을 맡고 있기도 해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기도 하다.





“2018년에 농업기술센터에서 혹서기 프로그램으로 농촌 어르신들을 모시고 마을회관에서 도자기 체험을 했어요.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생각해보니 왜 남의 동네에서만 하고 있나 싶어 우리 마을에서도 시작했죠.

막상 해보니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요즘 춘천시정부가 추진 중인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마을 돌봄을 먼저 실천한 셈이다.

도자기 체험은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손도 많이 쓰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 좋아 어르신 돌봄 프로그램으로는 제격이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로 모임이 금지되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도자기를 빚으며 즐겁게 놀던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TV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 시간이 1년 이상 계속되자 여기저기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보다 못한 마을 부녀회장이 이 모임을 이어 가자는 의견을 냈고

도자기를 빚으며 신나게 놀았던 경험을 떠올려 ‘노는 언니들’이라는 이름으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박사마을 ‘노는 언니들’


점말촌 도자기 공방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탁자에 놓인 접시들이었다.

지난주에 ‘노는 언니들’이 만든 알록달록 예쁜 접시들이 가마에서 구워져 나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목요일 2시 이곳 점말촌 도자기 공방에 ‘노는 언니들’이 온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아직 ‘언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기다렸더니 봉고차 한 대가 섰고 ‘언니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 박영진 이장이 매번 ‘언니들’을 직접 모시고 온다고 했다.

탁자에 놓인 접시 중 눈에 띄게 세련된 작품이 있었는데 다들 몰려들어서 이거 누가 만들었냐고 관심을 보인다.

“에구... 그거 우리 둘째 며느리가 지난번에 따라와서 만들었잖아”라고 누군가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한다.

이날 수업은 나무판에 도자기를 붙여 액자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지난주 미리 색칠해서 구워 둔 도자기 조각을 붙이는 작업인데 도무지 어떤 게 누구건 지 알 수가 없다.

다들 70대, 80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게 내 건가? 아니 저게 내 건가? 아이구 모르겠다. 아무거나 붙여” 하며 대충 비슷해 보이는 조각들을 나무판에 붙인다.

나뭇잎도 붙이고 꽃도 붙인다.

“요새는 이장님이 바빴나? 왜 우릴 들여다보지도 않아?” 하며 누군가 투정하듯 물어보자

요새 마을회관을 짓고 있어 바빴다고 이장이 대답한다. 나무 액자가 완성되자 이들을 지도하던 전채윤씨가 물어본다.

“언니들 다음에 오면 자기 작품 알아볼 수 있겠어요?

“몰라. 어떤 게 누구 건지. 지금은 알 거 같은데 담에 오면 또 못 알아볼지 몰라. 아무렴 어때. 아무거나 다 내 거지 뭐”.



‘노는 언니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 접시들(왼쪽)

서면 박사마을 점말촌 마을공동체 ‘노는 언니들’ 이 도자기 수업을 받고 있다.(오른쪽)



마을 담장에 도자기 벽화 만든다


이들은 얼마 전 여주 도자기 벽화 마을 탐방도 다녀왔다. 마을 공동체 ‘노는 언니들’의 사업계획 중 하나였다.

‘노년의 슬기로운 삶’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도 들었는데 아무래도 강의라는 게 지루했는지 다들 큰 관심이 없었다며 웃었다.

이제 ‘노는 언니들’에게 남은 사업은 하나. 여주 도자기벽화 마을처럼 직접 만든 도자기로 마을 담장을 예쁘게 꾸미는 사업이다.

도자기를 일일이 빚기는 어려워 ‘뽑기’처럼 꽃무늬, 별무늬를 찍어 도자기 소품을 만들어 뒀다.

이제 담장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마을에 담장이 많지 않아 한곳에 집중적으로 붙이기로 했다.

도자기 벽화 담장을 만들면 포토존도 되고 마을이 더 예뻐질 거라는 기대로 다들 들떠 있다.

“노는 언니들의 노가 무슨 노인지 아세요?”라고 묻고는 대답할 새도 없이

“늙을 로老예요, 늙을 로”하며 웃는 그녀들은 하나도 늙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