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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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0

2021.11
#봄내를 품다
최돈선의 골목이야기 ㉓
낭만시장 골목 기웃거리기


골목길은 좁다


그 골목길은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은밀히 번성했던 기억들이 있다. 인가의 골목길은 막다른 골목이 있기 마련이다.

그곳에 닿으면 다시 발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시장 골목은 어디론가 뚫려 있다. 그것이 인가의골목과 다른 점이다.

중앙시장 골목길은 난해하다. 난해함은 시장으로 몰려든 사람들로 하여 만들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발길, 그 어깨의 부딪힘. 그리고 좁은 길에도 좌판을 벌이고 앉아있는 상인들의 호객이 어지럽고 난해하다.

저녁이면 시장의 골목길은 취객들의 발자국이 화인처럼 찍혀 남는다.

가운데 큰 통로를 중심으로 시장은 위쪽과 아래쪽으로 갈린다.

지대가 약간 높은 위쪽 골목은 먹을거리 골목이고, 지대가 약간 낮은 아래쪽 골목은 양키시장이다.

편의상 먹을거리 골목을 동쪽 골목이라 이름 붙이고, 대로와 면한 서쪽을 양키시장 골목이라 부르기로 한다.


골목길은 건물 사이사이 빈틈이 난 길이다. 그러니까 시장의 골목은 점포와 점포 사이로 난 길을 이른다.

골목길은 때론 한가할 때도 있지만, 때론 몹시 긴장하고 흥분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골목길은 잔뜩 긴장하여 사람들의 발길과 거친 언어를 받아들인다.

시끄럽고 부산한 서로의 흥정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제 할 일을 마치고 돌아들 간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이어서 밀려든다. 그때가 골목으로선 가장 활기차고 싱싱해지는 때이다.

골목은 등 푸른 고등어처럼 거친 호흡으로 펄떡인다.



비오는 중앙시장 골목(왼쪽)

중앙시장 입구(오른쪽)



중앙시장의 또다른 이름은 낭만시장이다.

기록엔 4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1952년 미군들에 의해 미제 양키시장이 섰을 때 중앙시장은 전성기였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없는 것이 없는, 미제만의 눈부신 천국을 향해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질기고 톡톡한 미제 군복을 다투어 샀다.

그 옷을 몸에 맞게 줄이고, 검정 물감을 들여 남자들이 입었다. 군화나 농구화도 불티나는 상품 중 하나였다.

통조림류, 과자, 초콜릿도 인기였다.


하지만 지금 양키시장은 이름뿐인 명맥만 이어 오고 있다. 등산화, 등산복 등이 잔뜩 쌓여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지 오래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동차를 몰고 대형마트로 간다.

그 옛날 미제가 좋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겐 그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시장은 기존의 시장을 덮는다


시장은 필요에 따라 생겨난다. 재래시장은 그래서 자생적이다.

춘천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이 소양로1가 번개시장이다. 서면과 중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 좌판을 벌였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들은 값싸고 푸릇푸릇했다. 새벽에 장이 서고, 동이 트면 벌써 파장이었다.

그러나 서면 농부들이 이제는 오지 않는다. 좌판에 앉은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운명하거나 늙은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골목길에 좌판을 벌이고 채소나 감자나 알곡을 팔아 자식들을 키웠다.

유난히도 그 자식들은 공부를 잘하여 박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래서 서면을 박사마을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인물로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그 지역 출신이다.

10여 년 전부터 후평동 애막골엔 새벽부터 장이 서기 시작했다. 하나둘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아파트촌이 군집한 애막골은 아침 시장으론 제법 규모가 컸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장이 서는데,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산책길 나서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 긴 줄은 기찻길처럼 뻗어 있다. 입소문이 나, 먼 구역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든다. 새로운 번개시장이 조성된 셈이다.





그러하므로 낭만시장은?


낭만시장에는 거대한 아케이트가 설치되었다. 이제 시장 통로는 비가 오지 않는다.

골목길은 질벅거리지 않고, 우산과 우산이 서로 부딪는 일이 없어졌다.

아무 골목 벽에다 오줌을 누지 않아도 되는, 깨끗하고 환한 화장실이 군데군데 서 있다.

그 옛날 거인이 이 시장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닐 때, 사람들은 우루루 다른 골목 쪽으로 비켜주어야 했었다.

그 거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이제없다.

순댓국집 처마에서 술꾼들에게 꽃을 파는 소녀도 없다. 그 소녀의 이름은 모르지만, 한쪽 다리를 절었으므로 ‘라콤파르씨타’라고 불렀다.

그 소녀는 이미 늙어버린 지 오래일 것이다. 그 소녀를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 없다.


낭만시장엔 우리가 아주 이따금씩 새겨들어야 할 시와 문구들이 보인다.

58국수집 국수 맛을 잊지 못한, 어느 시인이 쓴 시가 골목 벽에 기대어 있다.

상에 가려져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중앙시장 골목에 들면/58국수집이 숨어 있다 /주인이 58년 개띠라는데 / 웃음조차 넉넉하다”고 했고

“열무김치 인심은 늘 넘쳐난다”고 은근히 칭찬을 던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또 사라진 벽시계 이야기도 있는데, 중앙시장 어느 점포벽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시침도 분침도 없는 둥그런 벽시계에 적힌 글귀는, 시 같기도 하고 철학적 문구 같기도 하다.

철자법 틀린 것을 수정 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사진작가 노익상이란 분이 찍은, 유일한 사진을 공개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분의 연락처를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자신의 정신은 고장난 줄 모르고 시간이 않맞다고 조용히 있는 벽시계를 비웃는다

이 벽시계를 내건 점포를 찾느라 골목길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불행히도 벽시계에 대해 아는분을 만나지 못했다. ‘잃어버린 벽시계를 찾아서’라는 동화나 써 볼까.

거울의 집으로 빨려들어 간 그 벽시계는 움직이지 않는 세계는 아니었을까.



만리향 짜장면


배가 고프다


낭만시장의 그 유명한 ‘낭만국시’집은 줄을 서야 한다. 나는 맞은편 ‘만리향’으로 들어선다.

짜장면 4천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골목엔 칼국수와 짜장면집이 있게 마련이다.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킨다.

의외로 짜장면이 내 입에 맞는다. 입에 맞는 짜장면집을 발견한다는 일은, 아나콘다를 해치우고 동굴에 숨겨놓은 보물상자를 찾는 일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예수


든든히 먹고 나서 시장 골목을 빠져나온다. 어디로 가야하나. 흐린 하늘이다. 먹구름이 짙은 오후 5시다.

문득 나는 약사리 고갯길로 시선을 준다. 그곳 죽림성당 예수상이 두 팔을 벌리고 삼악산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브라질 리우 예수상을 연상케 한다. 고난의 골고다 언덕길 같은 약사고개에 우뚝 선 죽림성당.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중앙시장을 굽어보고 있다.

나는 기도한다.

예수님.

이제 마음의 종을 치셔야 할 때입니다. 삼악산 절에서도 조금 있으면 종이 울릴 겁니다.

그때면 삼악산도 조용히 호수를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