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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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0

2021.11
#봄내를 품다
이병한의 생명살림도시 ⑪
의식의 진화, 시장의 활성화, 지구의 정화

1. ‘생명문명, 춘천 써밋’


결국은 무산되었다. ‘생명문명 춘천 써밋’을 열어보고자 1년 가까이 준비해 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비켜 갈 수 없었다.

10월에 모든 행사를 중단해 달라는 공문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사람들과 생산하는 사람들이 모두 춘천에 모여서

생명살림 미래도시를 전망하는 생생활활한 장면을 연출해 보고 싶었으나, 내년 봄으로 미루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봄의 도시’ 춘천의 운명인가 마음을 삭힌다.



생명운동, 생명문명으로 진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방점을 두고 싶었던 영역이 ‘생산하는 사람들’이었다.

테크놀로지를 장착한 비즈니스맨들이 결합 돼야 생각과 생활에 머물고 있는 생명운동이 생명문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여겼다.

지구를 살리는 생명살림기술을 확보하고

창업과 사업의 영역에 뛰어든 스타트업 대표들이 집결하는 박람회를 필히 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발품 팔아 그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내 생각을 보태어 펴낸 책 <어스테크 -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를 9월 말에 출간한 것도

춘천 써밋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어서였다.

왕의 생태운동, 환경운동과는 일선을 긋는 ‘비즈니스 액티비스트’들의 참여로

생명운동과 시장경제가 융합되는 ‘비즈니스 무브먼트’를 촉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곰곰 뿌리를 거슬러 오르다 보니 꼬박 30년 전, 1991년에 가닿는다. 이 땅에 <녹색평론>이 첫선을 보인 해이다.

물론 그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였다.


1998년, 세기말에 처음 녹평을 접했다. 종종 독자모임에도 나갈 만큼 애정이 깊었던 잡지다.

농 반 진 반으로 “좌녹평, 우창비”라고도 했다. <창작과비평>을 통하여 현실주의를 익히고,

<녹색평론>을 통하여 이상주의를 키웠다는 뜻이다.

나의 20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양대 잡지였다고 하겠다.

‘양 진영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또한 20대에 싹을 틔워서 지금껏 이어지는 인생/일생의 과업이자 평생의 화두가 된 것 같다.

분단체제 너머 녹색 한반도를 염원한다. 냉전체제 넘어 동북아의 생명평화를 희구한다.



‘오래된 미래, 생명으로 돌아가기’… 동어반복은 아닐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찍고 나면 몹시도 허망하고 허탈해지곤 했다.

염원하고 희구하되,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겨우 말하고 글 쓰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졌다. 불만이 커져 갔다.

기성의 체제를 비판하는 데는 말과 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새 체제를 건설하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현장으로의 하방이 뾰족한 대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오가다 만나는 환경/생태 쪽 분들은 (외람되게도)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존경하고 존중하되 따라하고 따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으로 돌아 가라, 그 무위자연의 이상향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만 년 전 농업혁명 이래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자연, 인공자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함에도 ‘오래된 미래’라거나 ‘생명으로 돌아가기’ 등

노스텔지어형 동어반복을 읊조리고만 있는 것이다.





2.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


무기물이 유기물이 되어 가고 있다. 기계가 생명이 되어가고 있다. 공학은 갈수록 생물학에 근접해 간다.

아니 양자가 합류하여 ‘유기공업’이 번성하고, 신생물학이 등장한다.

태어난 것beings과 만들어진 것things 사이의 새로운 생태계techno-ecosystem가, 신자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돌아 보면 애당초 최초의 생명이야말로 지구라는 혹성에 등장한 첫 번째 테크놀로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마법과도 같은 생명술로 말미암아 지구는 우주에서 예외적인 행성이 되었던 것이다.

ECO와 TECH는 물과 기름이 아니다.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의 분단체제를 극복해내고 싶었다.

갈증을 느꼈다. 갈애가 심해졌다.

그 갈망이 절정에 달한 해가 바로 2020년 작년일 것이다. 돌아보면 지독한 ‘코로나 블루’를 겪었던 한 해였다.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계획했던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무산되어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여름 불시에 ‘사상의 은사’,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마저 돌아 가셨다.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던 한 해였다.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전망을 상실하고 울적하고 우울한 시간을 견디고 버텼다.



“봄의 도시 춘천에서 3월에 만나요”

뜻밖으로 기나긴 슬럼프를 빠져나오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분이 한윤정 선생님이다.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의 디렉터를 맡고 계신다.

환경재단과 함께 마련한 4년차 생태문명회의에 ‘전환을 위한 스타트업’ 섹션을 기획해 보자고 청하셨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한창 관심이 무르익던 차였다.

참신하고 진취적인 기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장과 자본과 기술과 접점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실로 마인드 Mind,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켓Market을 장착해야 마법Magic이 일어난다.

도道와 술術이 융복합하여 신세계의 창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 생명을 살리는 기술과 만나면서 펼쳐지게 될 시장의 마술을 미리 견문하며 짜릿한 흥분도 일었다.

그 기쁨을 춘천시민과 전국에서 춘천을 찾아온 생명순례단과 더불어 나누고 싶었다. 전화위복이라 하던가.

올해 무산된 ‘생명문명, 춘천써밋’이 내년 봄 3월 말에는 더더욱 생생활활하게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